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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긴장이 만든 ‘노블리스 오블리제’

긴장이 만든 ‘노블리스 오블리제’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라는 뜻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과거 로마제국 귀족들의 불문율이었다. 제국을 이룬 그들 상류사회의 높은 도덕률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모범이 제국을 이루었으리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은 종합적인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사전적 정의를 보면 ‘노블리스’는 고귀한 프랑스의 귀족사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오블리제’는 강요하다, 어쩔수 없이 무엇을 하게하다, 억지로 시키다, 의무를 지우다, 고맙게 여기게 하다 등으로 의무가 자발적인 것 이상임을 말해준다.

우선 로마를 보자. 보통 어떤 나라든 성장을 이루고 내부문제가 폭발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로마는 반대였다. 고대로마는 초기에 왕정이었다. 나머지는 시민으로 파트리키(귀족)와 플레브스(평민)으로 구별했다. 이미 도시국가 시절에 공화정을 수립하고, 이후에는 양계급간에 격렬한 신분투쟁이 벌어지는데 그 절정은 BC 494년의 ‘성산사건’(聖山事件)이다. 평민들이 성산을 점거하고 협상을 요구한 것이다. 이때 지도자로 호민관이라는 직책을 만들었다. 호민관에게는 원로원의 결의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을 만들게 한 '칼레의 시민' - 로뎅의 조각상>



이후에도 로마는 귀족계급이 귀족주의적인 공화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솔선수범하여 자신들의 존재 필요성을 인정받기위해 결단을 내린다. 지금으로 보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스스로에게 강요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긴장관계 속에서 형성된 공동체의 에너지가 맹목적인 지배국가인 다른 나라를 압도하게 되어 세계제국을 건설한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그리스의 스파르타가 있는데, 그들은 압도적 다수의 헬롯(노예)폭동을 막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전자유민(사실상 귀족이다)에게 강요했다. 차이가 있다면 스파르타는 수동적이고 폭력적이라면, 로마는 적극적이고 고도화되었다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도시국가와 제국의 차이로 나타났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사회봉사나 헌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특권층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사회적 특권과 부를 누리는 사람들이 서로 뭉쳐 자신의 이익을 스스로 지킨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이다. 사회적 긴장과 시스템이 그것을 이끌어낸 것이다.

어느 국가나 어느 정도의 정치적 긴장 속에서 대국이 된다. 비슷한 사례로 몽골이 있다. 제국의 팽창기에 그들은 어떤 권력자도 법 앞에 평등한 원칙을 실현했다. 또한 모든 전리품도 나누었다. 지배자는 대신 명예와 존경을 원했다.

미국의 경우에도 19세기에 남북전쟁 등으로 생산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엄청난 경제력 집중으로 인해 국가의 위기가 닥쳐왔다. 대중들이 록펠러 등 독점세력에게 가지는 증오는 폭동수준이었다. 사회당이나 인민당 등 새로운 정당까지 등장했다. 이에 정치권은 반독점법을 만들고, 독점세력도 록펠러 재단이나 카네기 재단 등을 만들어 부를 어느 정도 환원했다. 모두 잃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다.

그런 긴장의 사회시스템 속에서 그들은 세계를 제패하게 된다. 하지만 베트남전쟁 이후 상황이 바뀐다. 징병제가 폐지되고 보수세력의 이념전쟁이 승리하면서, 더구나 외부적 긴장세력인 소련이 망하면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무색해진다. 그것은 굳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지 않아도 지배층이 자기재산과 특권을 빼앗길 위험이 없을 만큼 정교한 법과 제도, 그리고 대중이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아프간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10만이 넘는 군인 중 미국 의회의원의 아들이 한명도 없었다고 한다. 긴장이 없어진 제국은 지금 급속히 쇠퇴하고 있다.

다른 사례도 있다. 에릭슨을 만들어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발렌베리 가문은 자식들을 전원 사관학교에 보냈다. 더구나 그 가문에는 나치치하에서, 쉰들러리스트의 주인공보다 더 많은 공을 세우며  장렬히 죽은 영웅적인 외교관까지도 배출했다. 더구나 노조대표, 정부와 3자가 합의하여 사회협약을 체결, 스웨덴 사회복지의 한축이 되었다. 자본가들에게 악명 높은 스웨덴의 높은 세금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논란은 많지만 대약진운동 등 엄청난 정책실패에도 중국이 버틴 이유 역시 모택동과 주은래 등 지배 계급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역할이 크다.

한국의 보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꺼내기조차 민망하다. 최근 박정희기념관이 10년만에 모금목표액 500억 중 100억을 모금했다고 한다. 그나마 대기업을 제외한 개인기부는 12억원이다. 사회에 대한 환원은 고사하고 자신들의 이념과 이익을 위해서도 돈을 내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그나마 다를 것이라 생각했던 정운찬 총리의 행태를 보면서는 더더욱 말문이 막힌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천박하거나 자신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하나도 잃지 않으려다가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그들에게는 항상 오늘만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그들을 긴장시키는 외에는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