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 신앙으로 무장하고 낮은세율로 제국을 건설하다
이슬람의 사회개혁
혼란의 시대에는 종교가 등장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종교는 처음에는 사회혁명적인 주장으로 소외받는 대중들에게 파고 들고, 공동체를 만든다. 비록 주술에 의존한다 할지라도 그 너머에는 비록 비현실적이라 하더라도 기독교의 천년왕국설처럼,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는 내용이 포함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체제가 만들어지고 권력이 생기면 초기의 사회혁명적인 요소를 부정하고 체제유지의 도구가 되고 만다. 종말론을 주장했던 많은 종교가 그렇게 현실의 권력이 되었다.
가장 빠른 시간동안 제국을 형성한 이슬람은 이러한 종교의 정치학을 가장 강력하게 구현한 종교일 것이다. 마호멧은 처음에 신자들사이의 보편을 주장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었다. 부자들도 자선을 베푸는 조건으로 포용했다. 여성에게도 적지않은 호소력이 있었다. 여성보다 우월한(혹은 하다면) 남성이 여성을 보호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설교했으며 재산권도 허용했다.
종교를 창업한 사람이 직접 제국을 건설한 사례는 흔치않다. 특히 그 사후에 역동적 힘을 발휘한 경우는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마호멧은 그런 대표적인 선지자 이자 지도자이다. 순수하게 종교적인 측면에서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화나 종교관행과 커다란 차이는 없다. 가장 큰 차이는 그의 설교는 사회개혁을 위한 정치강령이었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무력 충돌이 일어나는 당시 ‘야만사회’를 질서 있는 ‘움마공동체’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따라서 이슬람에 있어서 확장전쟁은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신앙과 낮은 세율로 제국을 건설
630년 메카를 점령한 후 2년후 사망한다. 하지만 그의 강력한 메시지를 이어받은 후계자들은 정복전쟁을 계속한다. 그리고 642년에는 이집트까지 정복함으로서 20년 만에 이집트에서 시리아, 페르시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다.
이들의 성공은 사막의 ‘말’인 낙타를 이용한 전투력에 있기도 했다. 하지만 보다 결정적인 것은 비잔틴이나, 페르시아 등 낡은 제국들에게서 마음이 떠나 있던 사람들을 사로 잡았기 때문이었다.
이슬람 지배자들은 새로운 국가구조를 만들지도 않았고, 개종을 요구하지도 않았으며 신앙을 존중했다. 단지 세금을 정기적으로 납부하라고 요구했고, 저항한 귀족들의 토지와 국가소유의 토지를 압류했을 뿐이었다. 따라서 유대인 페르시아인, 기독교인, 조로아스터인 등 주민대다수는 훨씬 나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는 유대인 작가는 ‘조물주는 인간을 악에서 구하시려고 이스마엘(아랍)왕국을 주셨다’고 찬양할 정도였다.
당시 아랍인들은 종교세로 소득의 2.5%를 내는 것 외에는 세금이 없었다. 다만 국유지를 빌려주는 경우에는 10%의 세금을 받았다. 비이슬람인들에게는 이전에 비쟌틴에 내던 세금을 그대로 받았으나, 공정하고 정확했기 때문에 불만은 적었다. 더구나 종교의 자유를 인정받고 개종도 자유로왔다.
이렇게 신앙으로 무장하고 낮은세율로 침략하는 이슬람세력을 사치와 착취에 기반한 거대 제국들이 이겨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백년이 채 되지않아 이들은 서로는 프랑스부터 동으로는 인더스강까지, 북으로는 탈라스에서 당나라와 충돌하게 된다.
강압도 없는데 개종하면 세금을 적게 낸다는 것은 이슬람의 확산에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개종을 하게 되었고 비아랍계 무슬림(이슬람교도)이 제국의 대부분의 도시에서 다수가 되었다. 아랍인들은 이들 개종자들을 ‘마왈리’라고 부른다.
초기의 정신을 잃고 제국도 잃는다.
초기에 아랍인들은 종교를 설파하는 성전이라는 명분으로 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정복이 정체되고 새로운 개종자들이 평등을 요구하자 돌변했다. 마왈리들을 차별하고 특권을 배제한 것이다. 결국 그들의 평등한 공동체는 아랍인의 공동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장점이었던 공동체의 신앙이 생명력을 잃게 되면서 제국은 정체되고 급속한 혼란이 오게 된다. 초기의 종교적 신심은 제국이 건설되고 권력이 생기자 방어하는 종교적 논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종교를 확장시키려고 성전을 벌여놓고는 개종하지말라고 협박하는 상황인 것이다.
초기 시아파와 수니파의 시작은 이러한 갈등구조에서 시작되었다 정통 마호멧의 후계자인 알리를 추종하는 시아파는 오히려 아랍부족이 아닌 폐르시아 등 타 부족 출신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이슬람화된 사회에서 초기 공동체의 이상을 가지고 천년왕국의 검은 깃발을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이들을 기반으로 아바스 왕조가 건설되기도 했다.
아무튼 아랍인들은 초기의 열정이 식고, 무슬림이 무조건 많아지는 것이 자신들에게 좋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자 개종을 권하지 않을 뿐아니라, 오히려 말리고 억압하기까지 했다. 세입감소를 우려하여 농촌으로 쫒아버리기까지 했다. 아랍여인과의 결혼은 꿈도 꿀수 없었다.
이들이 평등한 공동체라는 종교적인 원칙까지 무시하면서 마왈리들을 탄압했던 것은 당시 이슬람을 지배한 우마이야 왕조가 소수의 아랍인이 세금을 내는 다수의 비무슬림을 지배한다는 전제위에 성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마왈리에게 동등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곧 세입의 감소와 세출의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국가구조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비록 마왈리와 아랍인의 구분이 인종적인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았다. 아랍인을 의미하는 디완(인명부, 연금대상자)에 등록되지않는 아랍하류층도 사실상 마왈리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러한 노력을 하더라도 이들 개종자들인 마왈리들은 이미 군대의 다수를 이루고 있었고, 정치적으로 ‘알리의 당,’운동 등 세로운 세력을 형성하면서 마침내 아랍인이 지배하는 이슬람제국은 무너지고 분열하게 된다.
따라서 이슬람의 팽창은 당분간 멈추게 되고 각 민족들은 특유의 이슬람국가를 건설하게 된다. 이것이 이슬람이 아랍을 벗어나는 세계종교가 된 이유이고, 동시에 아랍인들이 미처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만들어내지 못한 세계제국의 이유가 된다. 제국을 원하거든 제국을 이룬 이유를 알아야 하고 지켜내야 하지 않을까.
참고도서
김정위, <중동사>, 대한교과서. 1987
버나드 루이스, 김호동 역, <이슬람 1400년>, 까치. 1994
정수일. <이슬람문명>, 창작과비평사. 2002
진원숙. <충돌의 역사>, 신서원.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