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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사람은 밥심으로 산다

한국사람은 밥심으로 산다

 

‘한국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밥 즉 쌀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주 적절하게 표현해 주는 말이다. 우리들의 주식은 쌀이다. 이 땅에서 벼가 언제부터 제배되기 시작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기록상으로는 삼국시대부터 싸리 출현한다. 하지만 유물로만 보면 시작은 매우 오래전부터로 추정된다. 예를 들면 충북청원군 옥산면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1만1천년전 이상) 볍씨가 발견되어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경우도 있다. 아마도 인간이 무리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이땅의 사람들은 쌀을 먹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때부터 우리 민족에게는 밥심이 생긴 것이다.

기록으로 보면 삼국사기의 백제본기가 가장 오래되었다. “백제 2대 문루왕이 즉위6년(32년)2월에 명을 내려 처음으로 벼를 심을 도전(벼논)을 만들게 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적극적인 식량생산을 위해 왕이 직접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밭작물만 재배한 고구려 사람들은 쌀을 먹지 못했다.


쌀은 국력이었다.

쌀은 귀하다 보니 화폐와 같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지존의 자리에 오른 것은 조선시대부터이다. 세종때만해도 400여만 석의 쌀을 생산했다. 당시 인구가 6백만 정도 였으니 상당한 양이다. 이중 상당부분을 비축하고 여진과 일본에 쌀을 주었다. 이 과정에서 평화라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동북아시아에서 쌀이 곧 국력이었던 셈이다.

이러던 쌀은 조선시대 개항이후로는 큰 분쟁의 씨앗이 된다. 조선의 경제를 잠식한 일본은 1891년 한해만도 전체 생산량의 3분의1인 94만석의 쌀이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따라서 쌀값이 폭등했다. 그래서 쌀을 사기위해 당시 일본인이 만든 전당포에 옷과 물건을 맡기고 돈을 구어야했다. 결국 그 고리대로 인해 경제는 대혼란에 휩싸였다. 당황한 조선정부는 쌀 방출을 막는 방곡령을 내려 일본과 충돌하였다.

아무튼 이때 가장 큰 재미를 본 사람은 미곡상이며 정미소 주인인 타운센트였는데 이를 조선사람들이 발음이 잘 되지않자 ‘담손이 방앗간’으로 불렀고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정미소이다.

이런 식량난을 극복하기 위해 당시 재상이던 이용익은 안남미를 들여왔다. 안남미는 베트남에서 생산된 인디카 계통의 쌀로 우리쌀과 달리 찰기가 부족하다. 더구나 생전처음 외국쌀을 보게된 백성들의 반발은 거셌다. 당시 ‘수입쌀을 먹으면 에비 에미도 몰라 본다’ 등의 유언비어가 돌기도 했다. 백성들은 혼을 빼앗긴다고 생각했고, 정체성훼손을 우려한 농민들은 격렬한 저항을 했다. 따라서 쌀은 최초의 수입 당부터시 군대의 경호를 받으며 수입되었다. 쌀수입개방문제는 처음부터 중요한 갈등이었던 셈이다.

해방 후에는 미국쌀이 수입되기 시작한다. 차이가 있다면 필요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정치적 압력으로 수입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1969년에는 100만톤의 쌀을 수입되었다. 곡물메이저들이 쌀을 먹는 일본과 한국을 겨냥하여 생산한 켈리포니아산 쌀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밥심 좀 내보자

하지만 소득이 증가하면서 쌀은 계속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치적 안정을 위해 저곡가 정책을 추진하던 정부는 쌀소비를 줄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 결국 혼분식 장려정책으로 5공정권에서는 마침내 쌀소비량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것은 군사정권에서 혼분식장려를 위해 진행한 각종 캠페인이 일제시대에 쌀을 비하하던 내용과 거의 똑같았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쌀을 먹어서 조선사람이 머리가 나쁘다는 캠페인까지 할 정도였다. 산아제한정책과 혼분식 장려정책은 군사정권이 가장 성공한 정책이다. 하지만 그 결과 우리는 저출산과 식랼수입대국이라는 부메랑을 맞았다. 결국 가장 실패한정책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미국정부와 곡물메이저들은 여전히 쌀수입을 강요했다. 그 결과 쌀 재고가 천만석이 넘기도 했다. 그래서 오래 묵은 쌀을 소비하기 위해 영세민과 군인들이 활용되었고, 정부미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인 인식을 가져온 계기가 된다.

미래학자들은 식량과 에너지가 미래의 분쟁의 핵심이 될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에너지와 달리 식량부족은 우리의 생존 그 자체가 문제로 된다. 그래서 국토가 우리 못지 않게 적은 유럽에서도 자국의 식량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최근 풍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쌀값이 폭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밥심을 주어야한다. 그래야 우리의 밥심도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