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메리카합중국, 즉 미국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미국이 아닌 다른나라들이 많고 그들은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 말을 대단히 싫어한다. 미국중심의 사고방식을 갖는 사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앵글로아메리카와 라틴 아메리카로 구분한다. 이는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유래와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남미의 꿈 볼리바르
미국독립혁명의 상징이 워싱턴이라면 라틴아메리카 독립혁명의 상징은 ‘시몬 볼리바르(1783~1830)’이다. 보통 ‘해방자(el Liberator)’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볼리비아라는 국가 이름도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봅리바르는 남미 공동체의 국부의 개념으로 추앙받는다.
볼리바르는 베네주엘라의 카라카스에서 부유한 에스파냐 가계(家系)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다른 귀족들이 그랬듯이 유럽에서 교육을 받고 베네수엘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편한 삶을 버리고 험난한 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 1811년 독립전쟁이 실패한 후 4차례에 걸친 망명에도 굴하지 않고 군사행동을 계속 지휘한다. 마침내 1819년 뉴그라나다(New Granada:콜롬비아)를, 1821년 베네수엘라를, 그리고 1822년 키토(Quito:에콰도르)를 에스파냐로부터 해방시키고, 3국을 합한 대콜롬비아공화국을 수립하여 그의 이상을 실현하였다.
1823년 페루의 독립운동가 산 마르틴의 요청을 받고 페루로 건너가 1824년 페루에 남아 있던 에스파냐군을 격파하여 그의 지배하에 두었다. 또 페루 북부(볼리비아)에 남아 있는 에스파냐군의 잔당을 그의 부하 수크레에게 소탕시키게 하여, 1825년 볼리비아공화국을 수립하였다.
그의 이상은 미국처럼 라틴 아메리카를 아우르는 ‘라틴아메리카 합중국’을 건설하고 인종차별 없는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당시 독립한 세계 최초의 흑인공화국 아이티도 그의 모델이었다. 체게바라에게 쿠바가 그런 의미였듯이 말이다.
그래서 독립전쟁이 일단락되면서 1826년 에스파냐계 공동체를 목표로 한 파나마회의를 개최하였으나, 각국 간의 대립과 이해관계가 얽혀 1830년 해체되었다. 이렇게 하여 그가 의도한 대콜롬비아공화국이 해체되자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얼마 안 가서 실의와 곤궁 속에서 생애를 마쳤다. 그러나 1826년 그가 소집한 파나마회의는 ‘범아메리카주의’의 기초가 되었다.
그런데 그의 당시 그의 나이는 43세에 불과했다. 20년의 독립운동기간이 있었음에도 그는 젊었다. 그러나 그의 거대한 구상에 관심 없는 대토지소유귀족들은 ‘합중국’을 원하지 않았다. 실망한 볼리바르는 남미 여행을 떠나고 여행중에 사망하고 만다.
새로운 시작 볼리바르동맹
이런 볼리바르를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체게바라다. 체게바라에 대해 남미 사람들이 가지는 깊은 애정은 민중적인 문화에서 유래된 측면도 있지만 역사속의 볼리바르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졌음에도 자신의 이상이 왜곡되는 것에 대해 실망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자신을 버리는 용기, 그것은 존경할만 충분한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중남미 좌파 국가 모임인 ‘미주(美洲)를 위한 볼리바르 동맹(ALBA)’의 9개 회원국은 얼마전 회의를 열어, 내년부터 역내 무역 결제에 공동 가상 결제통화인 ‘수크레(SUCRE)’를 달러화 대신 사용하기로 했다. 때문에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지위가 크게 위협받게 되었다.
볼리바르는 생전에 주위의 사람들에게 미국을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다. 미국이 중남미의 나라들에게 매우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볼리바르의 날카로운 예측은 결국 사실이 되었다. 쿠바 침공, 파나마 침공, 칠레 아옌데 정권 전복 등 미국은 중남미를 자신의 뒷마당이나 되는 양 마음대로 주물러 왔다.
볼리바르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꿈이 살아나고 있다. 남미는 미국의 앞마당이라며 세계지배질서의 터전으로 인식하던 미국의 반응이 궁금하다. 볼리바르에 대한 역사적인 그리움과 함께, 미국을 조심하라는 볼리바르의 경고를 같이 기억해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볼리바르의 낭만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창수(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