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칠레, 페루 등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현재 볼리비아 코파카바나의 티티카카 호수(남아메리카 최대의 담수호로 페루와 볼리비아의 국경지대) 근처에서 기원전 5C경 잉카인이 주식으로 재배를 시작했다.
유럽에서 감자는 ‘악마의 작물’이라 불렸다. 16C 스페인 함대를 통해 유럽에 전파된 감자는 식물학자의 연구용으로 재배됐다. 식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먹지 않았다. 현재의 감자보다 더 작고 검어 보기 흉했던 점, 성경에도 실려 있지 않았던 점, 씨감자로 번식하는 점 때문에 ‘악마의 작물’이라고 해서 먹지 않았다.
곤궁했던 유럽의 군주들은 감자 재배를 독려했다. 한랭기후에 강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며 단위 면적당 수확량도 많아 구황작물로 감자 보급에 힘을 쏟았다.
프랑스는 왕비가 감자 꽃 장식을 하고 파티에 참석하고, 낮에 감자밭에 경비를 세우게 하고 밤에는 철수시켜 호기심을 갖게 만들기도 했다.
아일랜드의 경우 정복자였던 잉글랜드 귀족이 감자 재배를 독려했다. 농민이 감자만 먹으면 귀족에게 돌아올 것이 더 늘어날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1840년 감저전염병이 나돌았다. 오직감자 농사만 짓던 아일랜드에 대기근이 들었다. 많은 난민이 먹고 살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 때 이주민 중 미국 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의 증조부가 포함돼 있었다. 잉글랜드의 감자정책이 낳은 정치적 부산물이었다.
비타민이 풍부에 프랑스에서는 '밭에 나는 사과'라는 애칭을 얻었다. 감자는 영어로 포테이토(potato)다. 그런데 원래 포테이토는 고구마를 의미했는데 감자에게 자리를 내주고 sweet potato로 불린다.
국내에 감자가 전래된 것은 1820년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1824~1825년 사이 관북에서 처음 들어왔다고 돼 있다.
1832년 영국 상선이 전라북도 해안에 약 1개월간 머물렀는데 배에 타고 있던 선교사가 씨감자를 나눠주면서 재배법을 가르쳐 줬다는 기록도 있다. 이 기록에는 아일랜드와 비슷한 풍경이 기록돼 있다. 일부에서는 감자가 좋은 식량 대용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씨감자를 걷으려 했지만 백성들은 내놓지 않았다. 관아에서 감자 재배를 독려하면 노역과 함께 많은 세금을 걷어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감자는 수십 년 사이에 보급됐고 양주, 철원, 원주 등지에서 흉년에 굶주림을 면하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