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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운하는 이미 유물

운하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가장 거대한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이다. 운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원래운하는 교통을 위한 수운용과 홍수조절을 위한 관개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처음에 인류는 물길을 파서 홍수조절을 위한 관개를 했다. 그러다가 물길을 보다 넓고 깊게 만들어서 배를 띄우면서 운하가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의 베이징과 항조우를 잇는 대운하는 서기 5세기에 시작해서 20세기 초에 완공됐다. 그중에서 운하를 건설하다가 백성들의 반발에 부딪혀 몰락한 수양제도 있다.

유럽에서는 12세기에 이태리 반도의 베네치아는 바다에 면한 늪지대에 운하를 파서 대단한 도시국가를 건설했다. 또한 1770년대 들어 영국은 하천을 잇는 운하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프랑스도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했다. 산업혁명으로 마차를 이용하는 육상운송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미국도 건국초 부터 대규모의 운하를 건설하였다.

하지만 1830년 들어 운하건설 붐은 수그러들었다. 그것은 새로운 대규모 교통수단인 철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운하로 운송되는 물량은 대폭 감소했고, 1920년대 들어선 작은 운하들이 방치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날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운하는 손꼽을 정도이고 관광용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론적으로 운송수단으로서 운하는 철도의 등장과 더불어 역사의 유물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현재 사용 중인 운하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철도가 등장하기 전에 건설한 것들이다. 더구나 재미있는 것은 도로와 자동차의 발달로 철도마저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운행 중인 철도는 대부분 고속도로와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 건설된 것들이다.

우리나라에도 운하에 대한 시도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중단되었다. 예를 들면 태종때 신하들이 한강부터 남대문까지 운하를 파자고 주장하자 “우리 땅이 운하를 파기에 맞지 않아서 중국처럼 운하를 팔수 없다”라고 거부했다. 하지만 관료들이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1만명이면 충분하니 일단 한번 시험해보자고 하자 재차 주장하자 백성들의 고통이 원래 거부하는 이유라면서 끝내 듣지 않았다고 한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진행하지 않았던 것이 우리나라의 왕조들이 오래 지탱한 비결이기도 했던 것이다.

파나마 운하를 확장하는 사업에 대한 파나마의 국민투표가 압도적 표차로 통과되었다고 한다. 파나마 운하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57%의 국민들이 기권했고 공사과정에서의 부패가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예상밖으로 파나마운하를 통과하는 선박은 하루 기준 38~40대에 불과하고 2005년도 파나마정부에 4억8900만달러 수익을 준 것이 전부라고 한다. 가난한 파나마에서야 이정도 돈이라면 환경이던 어떤 문제건 상관없이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교할 조건도 아닌 우리나라에 운하를 놓자고 주장하는 시대착오적인 건설족들을 보노라면 그나마 인프라 건설이라는 부분만큼은 진정성을 가졌던 수양제가 위대해 보이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