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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겨레 시론] [시론] 기본소득, 찬반만 해야 하나(6/22)

기본소득 논쟁이 뜨겁다. 기본소득 찬성 진영은 기본소득이 노동공급을 늘리면서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 진영은 재원이 지나치게 많이 들면서도 저소득층의 복지가 오히려 악화된다고 주장한다. 양쪽 모두 나름 논리적 기반이 있다. 현재 제도에서 고려하면 반대 진영의 논리가 더 합리적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 등으로 산업경제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미래 어느 시점에는 완전히 새로운 복지, 행정 구조가 필요할 수도 있다. 두가지 주장의 장단점이 너무나 뚜렷해서 타협점은 없어 보인다.

 

질문을 바꾸어보자. 보편복지가 좋을까 선별복지가 좋을까? 한때 우리나라는 두 집단으로 나누어져 치열한 논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답은 명확하다. 보편복지와 선별복지가 적절히 섞인 ‘정책믹스’가 제일 좋다. 어느 한쪽만의 주장은 정치적 선명성을 얻을 수는 있지만 현실적인 대안은 아니다.

 

기본소득에도 중간이 있을까? 즉, 기본소득과 기존 복지제도가 적절히 섞인 정책믹스를 찾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해졌다. 과거 기본소득은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 정기성, 현금 지급, 충분성 이상 6가지 조건을 충족한 수당으로 정의됐다. 모든 사람에게 개인 단위로 자산 심사나 노동 요구 없이 ‘충분히’ 지급되는 현금수당이 기본소득이었다.

 

그런데 2016년 서울 기본소득 총회에서 충분성 조건이 빠졌다. 개인의 실질적 자유를 실현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지급되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충분성 조건이 빠지면서 아주 소액만 지급하게 되는 기본소득도 가능해졌다. 충분히 지급되지 않는 기본소득은 기본소득으로의 의미가 없다던 것에서 소액만으로도 나름 장점이 발휘될 수 있다고 생각이 바뀐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제도를 너무 도식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기본소득은 기존 복지제도보다 재원이 많이 필요한 것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기존의 복지제도를 기본소득으로 통합하면 기존 복지제도를 누리던 저소득층에 미치는 효과는 투입되는 재원 대비 감소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조세제도 개혁을 통한 적절한 정책믹스를 사용하면 제3의 기본소득도 존재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재원에 큰 부담 없는 기본소득도 있을 수 있다. 재원 부담이 적으니 저소득층이 누리는 기존의 선별적 복지제도와 병행 가능한 기본소득도 존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모든 소득세 신고자의 세금을 깎아주는 ‘기본공제’ 제도가 있다. 소득금액을 줄이는 소득공제 형식이다 보니 역진적일 수밖에 없다. 즉, 연봉 6억원 이상 초고소득층은 ‘기본공제’를 통해 약 70만원의 세금이 면제된다. 반면 연봉 약 5천만원인 중산층의 세금은 25만원만 깎아준다. 소득 하위 40% 면세점 이하 저소득 계층에는 단 1원의 혜택도 없다.

 

(중략)

 

모든 문제를 단번에 풀 수 있는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단점만 있는 제도도 존재하기 어렵다. 이론상에서는 대비되는 각종 정책도 정책믹스를 통해 현실에 조화롭게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 각각의 정책을 선명하게 나누어 정의하고 장단점을 구별하는 것이 이론의 시작이다. 반면 현실의 제도는 선명성이 아니라 타협과 정책믹스를 통해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재정 부담을 최소화한 기본소득 도입 방안으로 ‘기본공제’ 조정을 제시하였으나 이 또한 타협할 수 있다.

 

고기를 주어야 할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할까? 고기도 주어야 하고 고기 잡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 정책믹스가 해답이다. 그물과 미끼도 주어야 하고 그물 고치는 법, 미끼를 끼는 법도 가르쳐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시론] 기본소득, 찬반만 해야 하나 / 이상민

이상민 ㅣ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 기본소득 논쟁이 뜨겁다. 기본소득 찬성 진영은 기본소득이 노동공급을 늘리면서 삶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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