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는 언제나 죽음과 병이라는 위협에 대한 대처를 해야만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질병에 대한 치료를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전쟁과는 비교도 안 될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쓰려져 갔고, 때문에 인구감소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의료행위가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은 이집트이다. BC2700년경에 만들어진, 비석에 쓰여진 내용에 의하면, 이미 의사와 치과의사를 구분한 것으로 보아 상당한 수준의 의학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보면, 이집트에서는 의학서에 쓰여진 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중범죄로 처벌한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인들에게 “이집트같은 선진국처럼”이라면서 발전된 사회시스템을 찬양하기도 했다. 당시의 그리스가 페르시아를 물리치면서 절정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유럽중심의 사고방식이 유럽인들의 의도에 의해 편향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발전된 이집트의 의학은 그리스로 전해지면서 서양의학의 모태가 된다. 역사상 최초의 의사로 기록되어있는 사람은 임호텝(Imhotep)이다. 그는 BC2600년경 이집트의 대신이었고, 피라미드를 설계하기도 했다.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이들이 부자들의 호출에만 응해서 치료했다고 해서 이들을 처벌했다는 기록이 있다. 국가가 공공성을 가지는 의사의 활동을 통제했다는 것이 된다. 요즘과 마찬가지로 의사들은 돈과 권력에 대해 유혹을 받은 것이고, 국가는 이를 공적영역으로 되돌리려고 한 것이다. 아마도 이는 영원한 숙제일수도 있다.
그리스에 의료기술이 전달되면서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의사가 등장한다. 물론 자유민들에 국한되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에 대해 의료행위를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술을 전수해준 이집트에 대한 선망은 매우 높아서 이집트 유학을 한 의사들이 최고로 인정받았고, 소크라테스의 ‘선진국 이집트’에 찬양도 그런 배경이 작용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BC2600년경의 왕인 황제(黃帝)가 의학교과서인 내경(內徑)을 만들어 의학을 확립했다. 그런데 유럽과 중국, 양 문명의 의학은 다른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 서양은 외과적이고 해부학적인 것이 좀 더 중심이라면 동양은 몸에 칼을 대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 때문에 약재 중심으로 발전해온 점이 다른 점이다.
이러한 의학의 발전은 동서양 모두 상류층에 국한한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일반인들은 방치되거나 주술적인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공히 공공의료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전염병이 창궐할 때에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과학의 발전과 국민국가의 형성으로 대중의료의 필요성이 증대하면서 극복되기 시작한다. 18세기만 해도 유럽의 병원에는 의사가 없었다. 당시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환자를 수용하는 곳이었다. 일종이 격리였다. 감옥과 병원은 그들을 격리시키는 곳이지 치료하는 곳이 아니었다. 근래에 이르러 수용이 교정과 치료로 그 개념이 바뀐 것이다.
이 기준에서 보면 중국이나 우리나라 등은 공공의료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았다고 할수 있다.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였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는 중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공공의료정책을 시행했다. 삼국시대에 약부(藥部)나 약전 등의 기관을 설치하여 의료정책을 시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의사를 일본에 파견하기까지 하였다. 고려에 이르러서는 각 군현에 약점(藥店)을 두고 의사를 배치했다. 이때 이미 과거로 의사를 선발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독창적 의서 동의보감의 발간 이후로 시골 마을마다 균일화된 의료가 보급될 수 있었다. 더구나 왕실은 국고는 물론 비자금인 내탕금까지 동원하여 백성들의 의료를 위해 노력하였다. 가난과 질병은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러한 전통 때문인지 북한은 공공의료에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그래서 1982년에는 무상의료에 415명당 의사 한명씩을 배치하고, 의사담당제를 두어 책임지게 하였다. 당시 세계의 일부 지식인들이 북한에 대해 극찬을 한 이유 중에 공공의료의 완비가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체제가 절정기에 이르렀을 때의 상황이다. 현재 북한의 의료상황은 절망적이다. 공공의료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의료물품 마저 없어 응급처치조차 못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타미플루 지원문제도 그런 상황이 작용한 것이다.
남한도 건강보험제도의 완비로 세계에서 가장 건전한 재정을 유지해 왔다. 전 국민을 건강보험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영리병원 허용문제가 정치적인 논란이 되고 있다. 인류의 영원한 숙제였던 의료의 공공성을 애써 무너뜨리려고 하는 사람들의 의도가 못내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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