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박시(우지영 박사의 숫자로 보는 시대정신)는 드라마, 영화, 음악, 시사, 역사, 기념일, 절기 등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정치와 예산을 쉽게 설명하는 컬럼입니다. |
겨울철이 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칸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이다. 이 영화는 평생을 목수로 성실히 살아가던 다니엘이 지병으로 인한 실업 후 복잡하고 관료적인 절차 때문에 정부 보조금, 실업급여 등을 받지 못하고, 번번히 좌절하다가 끝내 죽음을 맞이하는 내용이다. 늙고 병이 든 다니엘에게 정부는 계량화된 수치를 들먹이며 그를 외면한 것이다.
현재 정부는 '코로나19' 재확산으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또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1인당 20만~30만원의 3차 재난지원금이 전국민에게 지급될 수 있도록 호소한다”며 문자를 발송한바 있다. 1차 재난지원금 14조3천억원은 전국민 대상, 2차 7조8천억원, 3차 3조6천억원은 소상공인·자영업자 등 취약계층 대상이다.
재난지원금 대상에서 ‘전국민’ 또는 ‘취약계층’ 인지, 또 지급방법에서 ‘현금’ 또는 ‘지역화폐’로 할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하지만 ‘전국민’과 ‘취약계층’ 사이에서 ‘재난지원 사각지대’ 즉 ‘복지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진짜 빈곤층들이 우리 주변에 상당수 있다. 2014년 ‘송파세모녀’의 안타까운 죽음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작은 지원금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고, 정부 기준 취약계층도 아니라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이들이 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지난 2018년 단전·단수 정보, 건보료 체납, 복지시설 퇴소 등 빅데이터 활용으로 복지사각지대 취약계층을 찾아내는 ‘복지사각지대 발굴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사업은 ‘사회보장정보시스템(행복e음) 서비스확대’ 사업으로 2021년 예산은 41억원이 편성됐다. 2020년 본예산 59억 대비 18억이 감소된 규모이다.
2020년 6월말 기준 예산현액 78억원 중 절반 수준도 안되는 34억원이 집행되었고, 전년도 이월액 19억원에 이른다. 계속적인 집행부진과 이에 따른 이월금 발생은 사업이 부진하다는 것이다. 이에 2021년 예산이 SW개발 구축완료 감소분도 있겠지만 18억이나 감소되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지난해 국감에서 정춘숙 의원은 “복지사각지대를 선제적으로 발굴·지원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복지사각지대 발굴관리 시스템'이 더 상황이 어려운 국민을 외면하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바 있다. 정의원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2015년~2019년(상반기)까지 발굴 대상 80만 6070명 24.2%인 19만5,258명 지원을 받았는데, 과거 복지서비스 지원 결과를 데이터화해 위기가구를 발굴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것이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료 17개월 체납자’는 선정돼 지방자치단체로 통보됐지만, ‘22개월 체납자’는 선정되지 못했다.
보건복지부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관리 시스템’ 도입 및 추진은 나름 성과가 있었지만 예산 집행률이 저조하고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는데 미흡한 측면이 있다.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현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해 대책을 마련하고 신속하게 대상자가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선 대상자 발굴, 후 지자체에 통보, 이후 지자체 지원’으로 진행되는 복잡한 행정절차에 따라 장시간이 소요되는 ‘복지사각지대 발굴 관리’를 탈피해야한다.
정부와 지자체 합동으로 동시에 ‘(가칭)복지사각지대 실시간 현황판’ 설치와 현황판에 위험신호가 감지되면 긴급으로 출동하는 ‘복지사각지대 현장기동대’가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대상자를 확대하고, 둘째, ‘빅데이터’의 분석지표를 더욱 다각화하고, 셋째 행정안전부와 협력하여 복지현장인 지자체의 실시간 정보를 데이터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등록 번호도, 컴퓨터 화면 속의 점도 아닙니다. 굽실거리지 않았으며 성실히 일하였고, 자선에 기대지도, 그에 빌어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았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은 언제든 도왔습니다. 나는 개가 아닌 사람입니다. 나는 단지 인간으로서 존중만을 바랐을 뿐입니다. 나는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다니엘의 정부에 대한 항소장 내용이다.
오늘도 가난을 증명하기 위해 수치스러움을 견뎌야 하고, 제도 앞에서 인간의 존엄을 훼손 당하는 수많은 다니엘 블레이크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