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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1년 예산, 어떻게 짤 것인가?

2021년 예산, 어떻게 짤 것인가?

                                                 이왕재 나라살림연구소 부소장

모든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2차 추경이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1차 추경 11.7조원이었고, 2차 추경은 12.2조원으로 편성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수활성화를 위해 30조원 규모의 3차 추경을 예고했다. 모두 54조원에 육박하는 역대급 추경이다.

현재의 경기 위기가 어느 수준으로 어느 기간 동안 계속될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한국 경제에 대해서는 긍정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4분기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였다. 하지만 다른 선진국 평균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제조업 산업 기반을 가진 한국과 대만의 경제는 V자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확실한 것은 저성장 또는 마이너스 성장의 기조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1년이 될 수도 10년이 될 수도 있을 이 암흑의 터널을 잘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는 재정과 금융을 통해 국가경제에 개입한다. 2021년 재정을 어떻게 편성하고 운영할지가 중요한 이유다.

2021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세입이 대폭 줄어들 것은 불 보듯 빤한 이야기다. 국세 기반인 법인세와 소득세도 줄어들 것이고, 지방세 기반인 재산세와 취득세도 줄어들 것이다. 국세가 줄어들면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주는 지방교부세도 줄어든다.

하지만 쓸 일은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이다. 국민의 소득이 코로나19 경제 위기 이전으로 회복되지 않으면 국가는 국민 가계와 개인의 경제적 위기를 책임져야 한다. 국가는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해 수입이 줄거나 없어진 국민들에게 대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예산은 점증주의에 근거해 편성되었다. 올해 예산보다 몇 퍼센트 더 늘어나는 규모로 편성해 분야별로 조금씩 늘려가는 식이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한국의 예산의 내용은 복지분야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수입이 급격히 줄고 쓸 곳이 대폭 늘어나는 변화된 환경에서 내년 예산을 편성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준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국가 채무와 지방자치단체 채무에 대한 관점부터 새롭게 바뀔 필요가 있다. 지난 3월 24일 기획재정부는 각 부처에 “2021년 예산안 편성지침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지침”을 국무회의 의결을 마치고 배부했다. 정부는 내년도 재정운용의 기본방향을 “재정의 적극적 역할 견지”와 “재정건전성 기반마련”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현재의 예산 편성과 평가 기준으로는 새로운 재정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채를 발행 규모와 용도가 제한되어 있고, 지방채를 발행해 채무비율이 높아지면 각종 재정 평가에서 불리한 평가를 받게 되어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당장의 재정 수요를 충당할 수 있도록 지방채 발행의 자율성을 확대해야 한다.

부처별 예산 편성도 점증주의 관행에서 벗어나 원점편성(제로베이스 편성)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올해 추경 과정에서 기재부는 부처에 가혹한 재정 혁신을 강요하고 있다. 내년 예산은 이 재정 혁신의 기반 위에서 신규 예산을 가장 많이 편성하는 예산이 될 것이다. 기재부는 새로운 예산 편성 지침을 준비해 부처가 새로운 재정 수요를 찾아내고 국민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사업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재정전략회의를 본 궤도에 올려서 실질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재정전략이 각별히 요구되는 시기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중기 재정의 전략적 운용을 위해 국가재정전략회의를 만들었다. 대통령이 직접 주관해 밤새 난상토론을 벌였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국가재정전략회의가 국가 재정이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재정 구조를 다시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