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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나라살림 연구소

[미디어오늘] 피의자들은 포토라인에서 자신의 얘기를 한다

2008년 2월. 역사적으로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동시에 발생했다. 하나는 이명박 정부의 시작. 또 하나는 숭례문 방화 사건이다. 발생 시기 말고도 두 가지 사건의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당분간은 성공했다고 자부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뇌물을 받고도 상당 기간 아무 탈이 없었다. 이제야 재판이 진행 중이다. 2심에서 17년 형을 받고 대법원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숭례문 방화범도 성공했다고 느꼈을 테다. 언제? 숭례문이 성공(?)적으로 전소됐을 때? 아니다. 방화범의 목적은 방화가 아니다. 방화는 수단일 뿐이다. 바로 언론이 방화범에 방화 동기를 묻고 그것이 전국에 방송됐을 때 아닐까? 결국 방화범의 방화목적을 실현해준 것은 언론이지 않을까? 언론이 방화범의 방화 동기를 구체적으로 전달하지 않았으면, 실패한 사건이 될뻔했다. 그러나 방화범의 억울한(?) 사연이 전파를 타고, 잉크에 묻어 전국에 전달됐다. 방화범이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다고 여기는 순간이다. 

언론이 만고의 진리처럼 내세우는 말이 있다. ‘알권리’라는 말이다. 알권리라는 것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사실을 보도할 권리는 없다. 물론 많은 시청자·독자들은 방화 목적이 궁금했을 수 있다. 그러나 독자들이 궁금해한다고 방화목적을 자세히 보도해서는 안 된다. 제2의 제3의 방화범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방화하면, 나의 억울한 사연을 전국에 알릴 수도 있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 해적 등 납치범과 협상 금액을 보도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략)

 

이러한 혼란스러운 출두 모습은 고위급 피의자 입장에서도 원하는 그림이 아닐 수 있다. 멀찍이 떨어진 카메라 앞에서 한 번 포즈를 취해주는 대가로 밀착취재 아수라판을 피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포토라인의 기능이다. 포토라인은 출입기자가 피의자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게 막는 라인이다. 피의자를 막는 라인이 아니다. 실제로 김기춘 전 실장은 미리 합의한 포토라인에 있는 카메라 기자를 피해서 유유히 들어가기도 했다. 

포토라인을 자신의 권력을 자랑하는데 사용한 것은 조주빈뿐만이 아니다. 지존파와 같은 최악의 범죄자도 카메라를 바라보며 부자를 증오한다는 자신만의 신념을 떳떳하게 말하기를 좋아하기도 했다. 결국 포토라인에 세워서 망신을 주자는 기대는 자신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보통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일이다. 오히려 카메라 앞에서 관심받고 싶어 하는 범죄자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범죄피의자를 다룰 때는 조심해야 한다. 아무리 국민들이 관심있어 하는 일도 보도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쯤에서 조주빈 보도를 돌이켜보자. 신상 공개 결정전에 먼저 신상을 공개하고 이를 신상털이식 흥미 위주 보도에 활용한 방송. 조주빈의 패션에 집착한 언론. n번방보다는 손 사장의 연관성이 더 중요한 뉴스 등이 넘쳐난다. 이제는 언론계 종사자라면 한 번 정도는 봤음직 한 성폭력 범죄 보도 기준 등이 있다. ‘몹쓸 짓’, ‘씻을 수 없는 상처’ 같은 말은 물론이고 ‘짐승’, ‘악마’와 같이 가해자를 비정상적인 특정인으로 타자화하는 표현도 삼가야 한다. 알권리는 관음증도 클릭 낚시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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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들은 포토라인에서 자신의 얘기를 한다 -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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