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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나라살림 연구소

[KBS뉴스] [탐사K/꼼수 의정보고서] ‘쪽지예산’ 뽐내더니, 874억 한 푼도 못써

해마다 국가 예산이 국회를 통과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쪽지 예산'입니다. 뉘앙스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지만, 국회의원들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당장 언론에선 따가운 비판이 쏟아져도 그때뿐입니다. 오히려 의원들은 자랑스럽게 지역구 유권자들에게 '쪽지 예산'을 홍보하고, 마치 자신의 정치적 역량이 입증되었다는 듯이 거들먹입니다.

 

그 대표적인 통로가 의정활동 보고서입니다. 매년 연말이나 연초 각 가정에 배달되는 국회의원들의 의정보고서엔 온통 '국비 확보' 자랑뿐입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앞세우는 것이 '신규예산'과 '증액예산'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쪽지 예산'입니다. 신규예산이란 애초 정부 예산안에 없던 사업을 국회의원이 끼워 넣은 것이고, '증액예산'은 정부 예산안에서 예산을 더 늘려 편성했다는 뜻입니다. 쪽지예산은 정부와 국회 사이의 정치적 뒷거래의 산물입니다. 그 자체가 심각한 문제입니다만, 우선 살펴볼 것은 그렇게 억지로 끼워 넣은 '신규예산' 사업이 과연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지 여부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권자는 속았고 국가재원은 낭비됐습니다.

 정부 결산서 '쪽지예산' 전수 분석


KBS 탐사보도부는 공공재정 전문 연구기관인 나라살림연구소와 함께 20대 국회가 시작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정부 결산서를 전수 분석했습니다. (국회의 결산은 회계연도 이듬해 6월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분석 가능한 결산완료 예산은 2018년까지입니다.)

 

(중략)

 

우선 신규예산 241건의 전체 집행률은 연도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략 90% 정도입니다. 여기까지는 별다른 특이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집행률을 구간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집행률 '0%' 신규사업 40건

 

집행률이 50% 미만, 그러니까 편성된 예산의 절반을 채 쓰지 못한 신규사업들을 추려봤더니 58건이나 됩니다. 신규예산의 4분의 1이 예산을 절반도 못 썼다는 얘기입니다. 액수로는 2,012억 원입니다.

 

(중략)

 

■ 준비 안 된 사업 무리하게 끼워 넣어

2018년 예산결산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봤습니다. 공통점은 처음부터 무리한 사업이었다는 겁니다. 사업 계획 자체가 부실했거나, 아직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억지로 국비를 편성했다가 쓰지 못한 겁니다. 예산을 요구했던 의원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상임위 '탈락'…예결위에서 '부활'한 순교자센터
전남 영광군에는 6.25 한국전쟁 때 많은 기독교인이 순교한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2017년 영광군과 지역 교계의 요청에 따라 '기독교 순교자 순례센터' 조성이 추진됩니다. 애초 정부 예산안에 없던 기독교 순교자센터는 국회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중략)

 

횡령 수사 중에도 '국비' 끼워 넣은 '국기원'


2017년 세계태권도본부 국기원은 대혼란에 빠집니다. 국가보조금 횡령 의혹 등 각종 내부 비리가 터져 나오며 수사가 본격화됐습니다. 국회에서도 국기원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잇따랐습니다. 이 아수라장에도 국기원은 550억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인 '국기원 명소화' 사업을 추진합니다. 국비를 종잣돈 삼아 낡은 시설을 리모델링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중략)

 

그린벨트에 지으려다 좌초한 '남한산성 박물관'


2014년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뒤 경기도는 남한산성 박물관 건립을 추진합니다. 남한산성을 지역구로 둔 김병욱, 소병훈 의원이 적극적으로 국비 확보에 나섭니다. 2017년 15억 원에 이어 2018년 5억의 예산이 통과되며 사업이 본격화되는가 싶었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첫 삽을 뜨지 못했습니다. 개발제한구역, 즉 그린벨트 허가 요건을 따지지 않고 무턱대고 사업을 추진하다 제동이 걸린 겁니다. 엉터리 행정에 감사가 진행되고 관련 공무원이 징계까지 받은 뒤 박물관 사업은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6년 연속 '쪽지예산'…6년 연속 집행 '0' 영일만 대교


경북 포항의 영일만 대교 사업은 '쪽지예산'의 대표급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16년 기본 용역비로 20억 원의 국비가 책정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는 정부는 사업성이 낮다며 보류했고, 그해 예산은 전액 불용처리됩니다. 그런데 이듬해부터 2020년까지 5년 연속 영일만 대교 건설사업 예산은 매년 국회를 통과합니다. 정부는 예산을 올리지 않았지만, 지역구 박명재 의원의 노력(?)으로 '신규 예산'으로 편성된 겁니다. 5년 동안 편성된 국비는 70억 원은 한 푼도 쓰지 못하고 모두 반납됐습니다.

 

나라살림연구소 이상민 수석연구원은 "국회에서 신규사업을 증액했는데도 집행이 안 됐다는 것은 사업의 효율성이 대단히 낮은 것이고, 실제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혀 현실을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전시성으로 집어넣은 홍보성 예산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사업은 망했어도 '홍보' 성과는 달성

전남 영광군을 지역구로 둔 이개호 의원은 2018년 의정보고서에 '신규 사업'으로 순교자센터 조성비 9억 원을 확보했다고 홍보했습니다. 지역 언론들도 이 의원의 국비확보 성과를 소개하며 '대풍작' '예산 달인'이라고 한껏 추켜세웠습니다.

국기원 명소화 사업은 무산됐지만, 이은재 의원의 2017년 의정보고서엔 '지역 예산 확보에 대한 주요 성과'로 남았습니다. 남한산성 박물관 사업은 김병욱 소병훈 두 의원의 의정보고서에 커다란 사진과 함께 치적으로 홍보됐습니다.

 

(중략)

 

못 쓸 줄 알면서도 편성? 정부와 의원의 뒷거래

국회는 국가 예산을 심사하고 승인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산편성권은 행정부에 있습니다. 거칠게 말하면 국회는 심사의 권한을 휘둘러 예산을 깎을 수는 있지만, 정부 안에 없는 예산을 새롭게 추가하거나(신규예산), 이미 편성된 예산을 더 늘릴(증액 예산) 권한은 없습니다. 신규예산이나 증액예산은 형식적으로 행정부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권한의 분산으로 재정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 할 수 있지만, 실제 국회에서 벌어지는 '예산 게임'은 그리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중략)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공생관계죠.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내가 예산을 얼마 따왔다고 홍보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인 거고요. 기획재정부 입장에서는 예산을 주었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못 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예산을 쓰지 못하길 바라기도 하죠. 마지막 협상은 비공개로 이루어집니다. 이 과정은 하나의 거대한 쇼처럼 보입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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