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다 틀린 문장이라고 인터넷 유머 게시판에 있는 문장이 있다. “한 달 연봉 2억 vs 무기징역 3년 어떤 게 더 낳나요?” 아마도 질문자는 2억원을 받으면, 3년 징역을 갈 수 있을지를 물은 것 같다. 그러나 저 짧은 문장은 완벽하게 틀렸다. ‘한달 연봉’은 형용모순이고 무기징역은 3년일 수 없다. 그리고 낳기는 뭘 낳을까?
최근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지배력 다툼이 언론에 오르내린다. 그런데 이를 전하는 뉴스를 보면, “재벌 오너의 경영권 다툼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진다”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이는 짧지만 완벽하게 틀린 문장이다.
오너란 말은 팩트가 틀리다. 조원태도, 조현아도 한진그룹의 오너가 아니다. KBS는 오너라는 외래어 대신 주인이라고도 표현했는데, 물론 주인도 아니다. 조원태, 조현아 각각 보유한 지분은 6%를 조금 넘는다. 한국 재벌총수들의 주식지분 비율은 보통 1~5% 정도밖에 안 된다. 그래서 절대로 재벌총수는 ‘오너’가 아니다. 지배주주라고 표현해도 괜찮을 때도 있지만, 특정법인의 주식이 단 한주도 없는 재벌총수도 많이 있다(주주조차 아니다). 그냥 재벌총수가 맞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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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선 남매가 싸운다고 ‘남매의 난’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콩가루 집안이라고, 진흙탕 싸움이라고 부정적으로 말한다. 그런데 언론이 왜 남의 가정 걱정을 할까? 남의 집 사생활은 걱정말고 기업과 이사의 공적역할을 걱정하자. 경영인이 한가족으로 똘똘 뭉쳐서 서로 견제도 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마음으로 경영하는 게 좋을까? 항공기를 비싸게 사서 리베이트를 통해 재벌 총수의 주머니로 숭구리당당 가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게 좋을까? 이미 진흙탕에 있는 상태라면, 싸우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진흙이 굳는다. 조금이라도 첨벙거리며 진흙탕에서 벗어나는 게 바람직하다.
남매가 싸운다기보다는, 두 경영인이 지배력 다툼을 하는 것으로 바라보자. 그리고 이렇게 경영인이 상대방을 견제하면서 상대방 잘못을 들추는 것은 기업의 투명성을 위해 매우 필요한 일이다. 예전 두산 ‘형제의 난’ 때도 대부분 언론은 진흙탕 싸움이라며 부정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형제의 난을 통해 두산 총수일가가 326억원의 비자금을 횡령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것이 진흙탕 싸움일까? 아니면 ‘때빼기 싸움’일까?
마지막으로 ‘재벌’이라는 말은 조심히 써야 할 단어다. ‘재벌기업집단’을 줄여서 재벌이라고도 표현하지만, 재벌은 ‘재벌총수일가’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즉, 재벌이라는 단어는 별개의 개념 둘을 모두 지칭한다. 언중이 현명해서 한국 재벌기업집단은 사실상 재벌총수일가와 동의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만든 단어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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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총수와 재벌기업집단을 계속 재벌이라는 단어로 혼용해 표현하다 보면, 재벌총수가 재벌기업집단을 동일시하는 현 상황이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이제는 재벌이라는 말 대신 재벌총수와 재벌기업집단을 분리해서 썼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코로나19에서 “이재용 코로나19 극복에 300억 지원”이라는 중앙일보 등의 뉴스 제목에 이재용의 사재가 아니라 삼성그룹 14개 계열사가 지원한다는 내용의 기사는 지양해야 한다. 법적 인격체가 다르다.
세줄 요약: 경영권이라는 말 대신 지배력으로. 오너라는 말 대신 재벌총수일가로. 재벌이라는 말 대신 재벌기업집단 또는 재벌총수일가로 구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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