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의 페이스북 글을 동의를 얻고 옮겨온 글입니다.>
<두줄 요약>
1. 기재부는 앞으로 예산안을 발표했다고 말할때는 엑셀로 된 진짜 예산안을 내놓아라!
2. 정치적, 행정적 규모가 아닌 경제적 규모(발생주의 개념)의 예산안도 공개해라!
추경이 발표되었다. 기재부는 추경규모가 11.7조원이라고 한다. 물론 모든 언론은 예외 없이 이번 코로나 추경의 공식 규모는 11.7조원임으로 못 박는다. 일단 추경 규모는 11.7조원이라는 것은 공식적인 '팩트'로 전제한다. 그 전제를 기반으로 평가가 엇갈린다. '슈퍼추경'이라는 비판부터 코로나 대응하기에는 규모가 작다는 비판까지. 재정파탄 걱정부터 수정안, 2차추경 얘기까지.
추경이 발표되거나 예산안 시즌엔 여기저기서 전화가 참 많이 오는데, 질문은 단순하다. 이 규모가 적절하다고 보는지 아니면 더 확대해야 하는지. 그냥 재정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멘트를 따고 싶어서 전화했겠지만, 난 여지껏 공식적으로 재정을 확대해야 한다는 단순한 결론적 주장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아마도 페북에서 조차도)
현재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전에 그냥 자신들의 평소 가치관만 반복적으로 말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아무도 설득시키지 못하는 공허한 논쟁이 된다. 논쟁의 유일한 이유는 세력 싸움 정도밖에 안되는데 세력 싸움을 할라치면 무조건 불리하다. 현실 진단 없이 논쟁하는 일이 이렇게나 많은데, 나까지 논쟁에 참여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내 역할은 현실진단에 충실한 실무자 역할을 하는 거로 마음 먹었으니.
기재부가 내놓는 예산안은 보도자료다.
보도자료는 예산안이 아니다.
현실 진단부터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재부의 '공식적 추경규모'는 11.7조원이지만 이는 경제적으로, 재정적으로 아무런 의미 없는 숫자다. 그리고 정부가 추경을 발표한 이후 모든 언론이 1면부터 관련 기사를 썼지만 그 모든 기사는 '추경안'을 보고 쓴 기사는 아니다. 추경안 보도자료를 보고 쓴 기사일 뿐이다. 왜냐면 국회가 추경안을 공개할 때까지 추경안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비아냥이 아니라) 저 짧은 추경안 보도자료를 보고 그렇게 긴 기사를 써내는 우리나라 기자분들의 능력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추경 보도자료를 가지고서는 아무런 분석을 할 수가 없다. 실제 추경안을 봐야지 이해가 된다.
그리고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은 국회홈페이지에 이제는 공개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작성된 문서다. 그래서 이를 해독 가능하게 엑셀에 담아야 한다. (곧 엑셀 형식으로 열린재정에서 공개할 것이다. 할렐루야! 모든 세부사업별 예산액을 세부사업 단위로 공개한지는 몇 년 안되었다. 이것도 수많은 사람들의 투쟁의 결과다. 나도 나름 기여를^^;)
그런데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열린재정에서 공개하기까지를 기다릴 수 없어서 노가다를 했다. 추경안은 텍스트로조차 인식할 수 없는 pdf 형태로 올라가 있고 세부사업 기준의 본예산 금액조차 안나와있다. 추경금액만 나와 있다. 그래서 이를 엑셀에다 일일이 노가다로 적고 본예산 금액을 따로 적어야 한다. 이렇게 엑셀에 입력을 하고나니 이번 추경의 정체가 보인다. 보도자료를 3번 읽고 하루 종일 끙끙해도 파악하지 못했던 정체가 금방 드러난다. 그냥 기재부는 예산이나 추경 보도자료를 배포할때 엑셀로된 예산안 리스트를 같이 배포했으면 좋겠다. 이게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VS.
첨부된 그림 중 엑셀은 노가다해서 작성한 표, 그림은 기재부의 추경예산안(이라는 이름의 추경예산안 보도자료). 그냥 엑셀로 보여주는게 얼마나 더 명료하고 깔끔한가. 제발 엑셀로 첨부터 공개하자. (열린재정에서 곧 공개되기는 할 거다.)
그리고 웃긴건 기재부는 추경안을 발표했다고 말하면서 문서 두 개를 내놓는다. '추경보도자료'라는 문서와 '추경예산안'이라는 이름의 문서다. 문서 이름만 보면 추경예산안을 보도자료와 함께 내놓는 형식이다. 그런데 '추경예산안'이라는 이름의 문서는 추경예산안이 아니라 추경 예산안 보도자료다. 그리고 '추경보도자료' 라는 이름의 문서는 추경예산안을 첨부자료로 한다는 한문장 짜리 보도자료다. 9페이지짜리 추경예산안 보도자료를 읽으면서 무언가 내가 추경예산안의 실체를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게 하는 네이밍이다.
그래서 추경예산안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전문가의 평가를 싣고 추경예산안을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기자가 추경예산안을 설명한다. 그리고 모든 국민은 딱 그만큼의 정보를 얻게 되겠지.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흘러 전문가들이 실제 예산안을 보고 분석을 할 때 쯤에는 이미 추경은 통과된 이후일 테고. (솔직히 말하면 통과된 에산을 분석하는 전문가는 많이 있지만 통과되기 전의 '추경안'을 꼼꼼히 보고 분석하는 전문가는 그리 많지는 않다.)
과연 청와대는 예산안을 보았을까.
경제적 실질 규모는 예산안을 만든 기재부도 모른다던데.
더 걱정이 되는건 청와대에 보고하는 과정이다. 기재부가 마련한 청와대에 보고하는 문서가 과연 기재부의 보도자료 이상의 자료일까? 실제 엑셀로 된 추경안을 (dBrain상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청와대에 공유하고 같이 논쟁해서 만드는 걸까? 기재부가 11.7조원 추경예산안을 편성했다고 하면 그것이 경제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판단하는 능력이 있을까?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단 두개만 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기재부는 예산안(추경안)을 내놓았다고 주장할 때, 엑셀로 된 진짜 예산안을 같이 내놓자. 그리고 기재부는 에산안(추경안)을 내놓을 때, 현재와 같은 현금주의 기준 말고(총지출이나 총계같은 기준, 더더군다나 추경 규모는 총지출 규모와 총계규모가 막 섞여있다. 단위가 다른 물리량을 그냥 더한 것과 마찬가지 ㅠㅠ) 발생주의 기준의(01GFS) 수치도 같이 작성하여 공개하자.
정말 21세기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예산안이 발표되었을 때 그 규모를 발생주의 개념(경제적 개념)으로 얼마인지 나도, 청와대도 심지어 기재부도 모른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일이다. 추경예산안이 (또는 내년도 예산안이) 발표되면 그 경제적 규모가 (발생주의적 개념의) 궁금한 건 당연하지 않나? 경제적 실질 규모조차 산정하지 않고 예산안 규모를 정하는건 정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혹시 조금더 관심있으신 분은
나라살림브리핑 제27호
코로나 추경 11.7조원? 경제적 규모가 아닌 정치적 규모
11.7조 코로나 추경이 '슈퍼 추경'? 실제 지출은 훨씬 적다 (뉴스톱 기사)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94
이상민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