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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7.7][정창수의 ‘나라살림을 제대로 바꾸는 법’]연구개발 예산만 늘리면 노벨상 받을까?

[주간경향] 17.07.25.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4&artid=201707181133011&pt=nv#csidx111835315d8f487921aaf11d67b9327

 

 

정부 19조원, 민간기업 40조원의 연구개발사업이 진행되지만 대부분 기획과제로, 창의적인 연구는 어려워진다. 문제는 정부와 기업의 리더들이 결정한 사업들의 성과가 매우 적다는 데 있다. 

해마다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10월이면 꼭 나오는 이야기다. 한국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대통령을 제외하면 노벨상을 수상해본 적이 없다. 이웃한 일본만 해도 과학기술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22명(미국 국적 2명 포함)이나 된다. 

한국에서 노벨상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논문의 양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네덜란드 라이덴대에서 매년 전 세계 900여개 대학의 ‘논문의 질’로 순위를 매기는 ‘라이덴 랭킹’이 있다. 이 지표는 피인용 횟수가 상위 10% 안에 드는 질 높은 논문을 각 대학에서 얼마나 내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다. 한국에서 지난 4년(2012∼2015) 간 가장 많은 논문을 배출한 학교는 1만5004편인 서울대다. 양으로는 세계 9위다. 하지만 상위 10%의 논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7.9%로 583위에 머물렀다.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과학기술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22명이지만, 한국은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 이외에는 아직까지 수상자가 없다. 사진은 스웨덴의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sweden.se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과학기술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22명이지만, 한국은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 이외에는 아직까지 수상자가 없다. 사진은 스웨덴의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sweden.se


그 많은 연구개발 예산은 어디로 갔나 

그러면 왜 한국의 연구자들은 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할까? 대통령 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연구개발(R&D) 예산을 증액하겠다는 공약을 내건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은 연구개발 예산이 늘어나면 우리의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그러면 그 성과 중에 노벨상 수상자 배출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한국의 연구개발 예산 투자는 규모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7년 연구개발 예산은 19.4조원으로 정부 총지출 대비 비중은 4.9%이다. 1965년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 18.5% 증가하여 같은 기간 정부 예산의 증가율 16.6%를 상회하고 있다. 재정투자 규모는 OECD 국가들 중에서 5위이고, GDP 대비 투자 비중(2014년 기준)은 OECD 국가 중 1위이다.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중은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은 4.23%, 일본 3.5%, 독일 2.9%, 미국 2.7%이다. 한마디로 투자가 적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문제는 중복과 누수도 있지만 관료제가 근본 원인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5개 출연 연구기관에 대한 지원이 1조9000억원에 달하고, 총예산 규모로 따지면 국가 연구개발 예산의 20%를 차지한다. 이 중에는 초과수입이 462억원으로 운영예산의 10%에 달하는데도 1460억원을 지원하는 원자력연구원도 있다. 또한 한국전기연구원 등 3개 기관은 연구참여율이 전혀 없는 직원을 총 115회에 걸쳐 논문의 주저자로 등재해 감사원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과다하게 많은 기관과 인력에 정부 예산이 지원되는 것이다. 물론 연구관리기관 18곳 중 15곳의 기관장이 관료 출신이라는 관피아 문제도 있다. 

관료제의 문제는 사업 선정에도 있다. 주제를 정부 관료들이 정한다는 것이다. 2015년 기준으로 순수연구개발비는 36%인 6.8조에 불과한데 이것도 5.7조원은 정부 주도 기획사업이고, 연구자 주도 공모사업은 1.1조원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80% 이상이 5000만원 이하의 소액이다. 이러다 보니 대학에서 수행하는 연구개발은 13%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정부 출연기관이나 대기업들 관련 연구개발인 것이다. 이런 구조가 제2·제3의 황우석 사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거대 프로젝트의 환상에 젖은 정부와 관료들이 잘못 판단할 경우 연구개발사업이 정치화되거나 낭비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 역할 재설정해야 한다 

세계화와 더불어 4차 산업혁명까지 논의되는 현실에서 정부의 역할은 중요하다. 특히 교육과 연구개발은 이념을 떠나 정부의 중요한 역할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문제는 어떤 정책을 가지고 어떤 성과를 내는가이다. 

정부 19조원, 민간기업 40조원의 연구개발사업이 진행되지만 대부분 기획과제이다. 그러다 보니 단기적 성과를 내는 사업에 집중될 수밖에 없고 창의적인 연구는 어려워진다. 문제는 정부와 기업의 리더들이 결정한 사업들의 성과가 매우 작다는 데 있다.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소’는 세계 최고의 기초과학연구소이다. 83개의 연구소에 2만2000명이 연구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매년 2조4000억원을 지원하고 있는데, 원칙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독일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33명이 배출되었다. 영국도 연구내용은 물론 연구비에도 간섭하지 않는 ‘홀데인 원칙’을 적용한다.

그럼 정부의 정책만 바뀌면 우리의 기초과학이 발전할까? 서울대가 2015년 세계적인 석학들과 함께 진행한 자연과학대 평가작업은 의미 있는 답을 보여준다. 평가 결과는 선구자가 아닌 추종자이며, 창의적인 연구가 아닌 따라하기, 이것이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현주소라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관료적인 문화와 정책인 것이다. 대안은 연구개발사업의 다양화이다. 물론 그 전제는 연구자들의 자율성을 높이는 일종의 민주화이다. 창의적 주제 선정에 대해 규모를 확대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탈권위주의, 탈관료주의가 얼마나 놀라운 성과를 가져오는지의 사례가 있다. 일본 나고야대학 연구실에는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없다. 다들 서로를 ‘누구씨’라고 부른다.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주제를 선정해 연구한다. 그 결과 지난 10여년 동안 노벨상 수상자를 6명이나 배출했다.

 

2017년 1월 국회에서 연구자 중심의 연구개발 예산지원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결의안이 채택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서울대 의대 호원경 교수(이 분은 박완서 작가의 따님이기도 하다)는 청원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본 청원은 무조건 연구비를 늘려달라는 청원이 아니라, 연구자 스스로 제안하는 연구과제로 공정하게 경쟁해서 연구비를 받아 연구할 수 있도록 연구비 지원구조를 개선해 달라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과거의 관행을 고수하는 정부 관료의 생각만으로 정해진 사업만 한다.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생각해야 하는 정책이 아니라 관련 조직의 지속가능성만을 생각한다. 꼭 노벨상을 배출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 발전을 위해서라도 개혁이 필요하다.

<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