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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나라살림 연구소

[17.1]<최순실과 예산도둑들> 펴낸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최순실 예산 놓친 시스템 문제”

[주간경향] 17.01.25 정용인 기자

 

 

사적인 자리에서 그를 만나면 항상 ‘예산 강의’를 듣곤 했다. “어디 어디에서 지금 농간이 벌어지고 있다”는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시일이 지난 후 언론 보도에서 그 이야기를 발견하고 아쉬워한 일도 종종 있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그와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들이 펴낸 새 책 <최순실과 예산도둑들>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책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은 이것이다. 박명림 교수의 말마따나 최순실과 박근혜가 ‘불법 사설정부’를 통해 합법정부를 마비시키고 국가조직을 파괴하려 했다면, 그것은 최순실·박근혜 개인의 문제다. 정 소장 등의 문제의식은 “그러나 이러한 엽기적인 시도를 걸러내지 못한 국가시스템이 더 문제”라는 것이다. 국가의 정상적인 업무프로세스가 이것을 일차적으로 막아냈어야 하고, 행정시스템이 막지 못했다면 사정기관과 감사기관이 2차적으로 막아낼 수 있었는데 이들조차 전횡을 막아낼 수 없었다. 이 문제를 조사하려고 했던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옷을 벗어야 했다. “왜 우리는 주사자국 같은 작고 사소한 것에만 분노할까요. 어찌 보면 너무 크다 보니 큰 그림은 눈에 안 들어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 조그마한 한옥에 자리 잡고 있는 나라살림연구소에서 정 소장을 만났다. “이른바 최순실 예산이 1조4000억원이라고 합니다. ‘보육대란’을 불러 왔던 누리예산 규모가 8000억원입니다. 여기에서 원래 주기로 했던 것을 빼면 논란이 되었던 것은 2000억원도 안 됩니다. 그걸 지출하면 나라가 흔들린다고 난리를 쳐놓고 자기들에게 가는 1조4000억원은 아깝지 않았던 거예요.”

2016년 하반기 국정감사를 전후로 ‘최순실’이 논란이 되었지만 이미 몇 년째, 특히 2016년 상반기 예산안 여기저기에 대규모로 등장한 ‘VIP’라는 단어에 박스 친 설명을 달고 있는 예산들에서 ‘이상패턴’은 발견됐다고 정 소장은 말한다. “VIP, 그러니까 대통령이 강조한 예산이라는 것인데, 그걸 국회까지 들이밀다니 정상적인 사고가 마비된 셈이에요. 우리나라가 전제국가도 아니고, 관료들에게는 중요한 사람일지 모르지만 대통령이 관심 갖는 예산이니 통과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가당키나 한 소리입니까.” 문제는 그 다음이다. 국회에서 ‘최순실 예산’ 1300억원을 삭감했다고 하는데, 나라살림연구소에서 찾아낸 것이 올해에만 6500억원이다. “더 큰 문제는 잘못된 예산을 구조적으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최순실만큼 문제 있는 사람들이 기득권을 쥐고 있으니 손을 못 대는 겁니다. 개혁하겠다는 정치인들, 결국 예산을 바꾸지 못하면 개혁은 립서비스에 불과한 겁니다. 그걸 알리려고 책도 내고 방송에도 출연했는데, 무기력을 호소해요. 동의는 하는데 누가 바꿀 수 있냐고요. 그런 상태에서 정권이 바뀐다고 한국 사회가 과연 달라질까요.” 

책은 지난해 11월에 기획해 세상에 나오게 됐다. 놀라운 생산력이다. “저녁 9시 정도 취침해 오전 3시에 일어나 조간신문들 스크랩하는 일로 일과를 시작합니다. 다른 일정이 없으면 8시까지 글을 쓰거나 읽고 싶은 책을 읽는 등 ‘개인숙제’를 합니다. 9시에 사무실에 나와 연구소 용역 등을 점검하는 회의를 하고요. 5시쯤 집으로 가서 가급적 저녁은 집에서 먹습니다.” 그런 ‘바른생활 사나이’인지는 몰랐다. 올해 상반기에는 기존 강의 등을 바탕으로 ‘나라살림 흥망사’라는 책을 준비 중이고, 연구소 차원에서 ‘예산전쟁’이라는 책을 또 펴낼 계획이다. 그의 활동을 주목하는 이유다.

<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