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총칙 예외조항 삭제 안하면 예산안심의 헛고생
동일부서, 동일부문 정책사업 이용 사전승인 막아야
간주처리 없애고 성립전사용예산요건 엄격통제 필요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위원 서호성
지방정부(집행부)들이 ‘예산안 앞부분에 있는 ‘예산총칙’에 정책사업간 이용’이나 ‘간주처리’를 사전승인해 주는 조항을 삽입해 놓는 경우가 많다. 지방의원들은 세출예산사업에만 신경 쓰고 예산총칙을 잘 안 본다. 세입예산 추계를 제대로 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예산총칙을 바로잡는 일이다. 성립전사용예산과 간주처리는 완전히 다르다. 또 성립전사용예산도 법을 지켜 엄격히 집행하고 있는지 자료요구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지방정부(집행부)가 심의, 승인해 달라고 제출하는 예산안 앞부분에 ‘예산총칙’이 있다. 예산안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예산서의 기본이지만 지방의원들은 이것을 잘 안 본다. 신경이 온통 세출예산안에 가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세입예산안이 제대로 편성됐는지를 보지 않고 세출예산, 내 관심사업이 어떻게 됐는가만 보는 것은 제대로 된 예산안심의라 할 수 없다. 그리고 세입예산에 제대로 추계됐는지 보는 것보다 더 먼저 해야 할 일이 예산안 예산총칙을 살펴보는 일이다.
<예산편성운영기준 별표12 예산총칙 서식>
지방재정법 제40조에 “예산총칙에는 세입ㆍ세출예산, 계속비, 채무부담행위 및 명시이월비에 관한 총괄적 규정과 지방채 및 일시차입금의 한도액, 그 밖에 예산 집행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여야 한다”고 돼 있고,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운영기준 제7조에는 “예산총칙의 구성 및 형식은 별표12와 같다”고 돼 있으며, 별표12에는 예산총칙 서식이 있다.
그런데 예산편성운영기준 별표12 예산총칙 서식에 과도한 내용이 들어가 있다. “지방재정법 제47조제1항 단서규정에 의한 기준인건비에 포함된 경비 및 동일부서에서 동일 부문에 있는 정책사업간의 경비는 상호 이용할 수 있다”는 ‘예시’가 그 서식에 포함돼 있는 것이다.
지방재정법 제47조의2 제1항에는 "각 정책사업 간에 서로 이용할 수 없다"고 못박아 놓고도, 또 한편으로 "다만 미리 지방의회의 의결을 거쳤을 때에는 이용할 수 있다"고 예외를 열어 놓았다. 지방의회가 의결해 주면 할 수 있다는 하나마나한 소리같은 이 단서가 예산총칙에 정책사업 간 이용 사전허용조항을 넣는 근거가 된 것이다.
예산의 8대 원칙 중 ‘예산의 목적 외 사용금지 원칙’과 ‘예산 한정성의 원칙’이 있다. 2개 원칙 모두 “지방자치단체장은 세출예산에서 정한 목적 이외의 경비를 사용할 수 없고, 분야, 부문, 정책사업 간에 융통하여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예산의 의미가 상실되고 지방의회 예산심의권이 침해받는다. 아니 무력화된다.
그런데 예산편성운영기준 예산총칙 서식에 “제8조 동일부서에서 동일 부문에 있는 정책사업간의 경비는 상호 이용할 수 있다”는 ‘예시’가 들어가 있음으로써 예산편성운영기준에서 예산의 8대 원칙을 주장하는 행정안전부 스스로 예산의 8대 원칙을 깨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지방자치단체 예산총칙에 지방의회의 예산심의권을 심대하게 침해하고 있는 조항이 삽입돼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의 예산총직과 경기도 용인시의 예산총칙을 비교해 보자.
<충남 보령시 예산총직>
<경기도 용인시 2020년 본예산 예산총칙>
용인시의회는 예산총칙 제8조 “동일부서에서 동일부문에 있는 정책사업 간의 경비는 상호 이용할 수 있다”고 사전 승인해 줌으로써 용인시 집행부가 같은 부서 안에서는 마음대로 예산을 이리저리 옮겨 써도 제어할 방법이 없다. 그러면 힘들게 예산심의 하는 의미가 없다.
예산총칙으로 예산의 의미를 무력화하고 지방의회의 예산안심의권을 침해하는 사례는 '간주처리' 사전승인으로 발전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예산총칙에 국비, 광역시도 교부금 등에 대해 지방정부(집행부)가 알아서 먼저 집행하도록 승인해주는 ‘간주처리’를 사전승인해주는 조항을 넣기도 한다. 행안부가 조장한 예산총칙 활용 학습 효과다.
일부 지방자치단체 예산서 예산총칙에는 “회계연도 중에 교부되는 지방교부세, 보조금 및 교부금 등은 예산 승인된 것으로 간주처리하고 이를 의회에 보고 한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간주처리는 법령에 있는 공식 예산용어가 아니다. 예산의 분류상 ‘성립전사용예산’이란 용어가 있으나, 이는 예산원칙의 예외로서 엄격한 조건 및 절차를 거쳐 지방의회의 엄격한 통제아래 진행된다. 간주처리는 이와는 달리 지방정부의 예산집행 재량권을 송두리째 내주는 악성 조항인데, 이것이 예산총칙에 포함돼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아직도 많다.
<서울시 서초구의회 2020년 예산서 예산총칙>
서울시 서초구의회는 예산총칙 제9조 “회계연도 중에 교부되는 지방교부세, 보조금 및 교부금 등은 예산 승인된 것으로 간주처리하고 이를 의회에 보고한다”고 사전 승인해 주었다. 이로써 서초구 집행부는 국비나 서울시비 교부 사업을 서초구의회의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집행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법령에 있는 예산 절차인 성립전예산은 교부되는 국비나 광역시도비만 집행 가능하지만, 간주처리로 사전승인해 주면 국비 및 광역시도비에 자체예산이 함께 들어가는 경우 간주집행처리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2020년도 경기도 파주시와 서울시 서대문구 예산서를 비교해 보면 예산총칙의 문제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파주시의 예산총칙은 모두 6개조로 지방재정법에 규정한 최소한으로 돼 있는 반면 서대문구의 예산총칙은 모두 9개조로, 지방정부(집행부)가 의회의 승인 없이 예산을 자율적으로 조정해 쓸 수 있는 집행부 재량권 남용조항, 즉 지방의회 예산심의권 무력화 조항이 많이 삽입돼 있다.
예를 들어 서대문구 예산서 예산총칙 제8조에는 “동일 부서에서 동일 부문에 있는 정책사업 간의 경비는 상호 이용 할 수 있다”고 돼 있고, 제9조에는 “회계연도 중의 보조금, 교부금(세), 기타 재원조정 수입 등(예산안 의회 제출 후 교부된 사업비의 명시이월 포함)은 예산승인된 것으로 간주처리하고, 의회에 사후 보고 한다”고 돼 있다.
서대문구의 예산총칙을 보면 사실상 지방의회가 힘들게 예산안심의를 할 의미가 없어진다. 정책사업간 예산 이용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그 많은 보조금, 교부세(금), 기타재원조정 수입 등은 의회의 예산승인을 안 받고 알아서 집행하겠다는 것을 미리 승인해 주었다. 이러면서 무슨 예산안 심의를 했다는 것인지.
예산총칙도 예산안의 일부이므로 심의를 통해 삭제함으로써 바로잡을 수 있다. 행정안전부가 2015년 발행한 지방재정제도 해설사례집에 지방의회는 예산총칙도 예산안심의를 통해 수정이 가능하다고 돼 있다.
예산총칙의 정책사업간 이용과 간주처리를 사전승인 해주는 것이 지방의회의 예산심의권을 얼마나 많이 침해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려면 “예산총칙에 사전 승인된 동일 부서에서 동일 부문에 있는 정책사업 간 상호 이용 2018년~2020년 3년치 현황”, “예산총칙에 사전 승인된 회계연도 중의 보조금, 교부금(세), 기타 재원조정 수입 등(예산안 의회 제출 후 교부된 사업비의 명시이월 포함) 간주처리 2018년~2020년 3년치 현황”을 자료요구 해 보면 된다.
특히 간주처리 예산 가운데 국비나 광역예산 말고 자체비용이 투입된 사업이 많으면 대놓고 지방의회 예산안심의권을 무시한 집행부의 악질적 행태여서 분노하고 응징해야 한다.
<자료요구>
1. 예산총칙에서 사전승인된 동일 부서에서 동일 부문에 있는 정책사업 간 상호 이용 2018년~2020년 3년치 현황
2. 예산총칙에서 사전승인된 회계연도 중의 보조금, 교부금(세), 기타 재원조정 수입 등(예산안 의회 제출 후 교부된 사업비의 명시이월 포함) 간주처리 3년치 간주처리 현황(2018~2020년. 연도별)
‘간주처리’가 얼마나 지방의회 예산심의권을 침해하는 독소조항인지 더 알아보자.
지방정부(집행부)는 “국가와 자치단체가 각각 독립된 예산을 운영하는 상황에서 사업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예산총칙에 간주처리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확정 후 국고보조금 교부 등 불가피한 경우가 발생하면 간주처리 방법이 아니라 ‘성립전 사용예산제도’를 이용하면 된다.
예산의 종류를 성립시기에 따라 분류하면, 본예산과 수정예산, 성립전사용예산과 추가경정예산으로 나뉜다.
성립전사용예산은 쉽게 말해 지방의회의 예산승인 전에 자치단체장이 예산을 집행한 후 차기 추경예산에 계상하여 추후 의회승인을 거치는 제도다. 물론 예산원칙에 위배되는 예외이기 때문에 대상이 엄격하다. 사업용도가 지정되고 소요경비 전액이 교부된 지방교부세와 국비보조금, 재해구호 및 복구와 관련하여 교부된 경비로 제한된다.
하지만 이 성립전사용예산을 악용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대표적인 것이 성립전사용예산 대상사업을 위법하게 포괄적으로 해석해서 기초지방자치단체 자비가 들어가는 사업도 성립전사용예산으로 처리해 버리는 사례다.
또 성립전사용예산과 일부 유사한 간주처리제도를 은근슬쩍 예산총칙에 끼어 넣어 국가나 광역지방자치단체에서 내려오는 예산과 관련 있는 사업을 기초단체 집행부 제멋대로 집행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지방재정해설사례집에서 보듯 집행부가 적법하게 성립전사용예산 절차를 밟아 추가경정예산안에 올린 예산은 지방의회가 삭감할 수 없다. 용도가 지정되고 소요전액이 교부된, 이미 사용한 예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립전사용예산은 집행 조건이 까다롭다. 반드시 용도가 지정되고 소요전액이 교부되어야하며, 국가 또는 광역시도로부터 교부되어야 한다. 즉 광역시도의 출자출연기관 공모에 당선돼 받은 예산도 안 되고, 해당 기초 지방자치단체 예산이 한 푼이라도 투입돼서는 성립전사용예산으로 집행하면 안 된다.
그런데도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자비(해당 기초지방자치단체 예산) 예산이 투입되는 상황에서도 성립전사용예산이라며 집행 하는 경우가 있다. 성립전예산사용은 해당 자치단체 자체예산이 포함돼 있으면 불가하다.
그래서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3년치 성립전사용예산 현황 자료요구를 해서 철저히 검증해 봐야한다. 만일 성립전사용예산에 국비나 광역시도비 이외에 기초단체예산이 포함돼 있으면 지방재정법 위반이다.
<자료요구>
1. 3년치 성립전사용예산 현황(2018~2020년. 연도별)
이렇게 성립전사용예산 절차가 복잡하고 조건이 까다로워 지방자치단체는 예산총칙에 성립전사용예산과 비슷한 간주처리 조항을 삽입해 놓고 지방의회가 문제제기를 안 하기를 기다린다. 실제 많은 지방의회가 “어차피 성립전사용예산 절차를 밟을 것을 미리 인정해주는 것”으로 잘못알고 간주처리 조항을 삭제하지 않고 놔둔다.
하지만 성립전사용예산과 간주처리는 그 법적 지위부터 하늘과 땅 차이다. 성립전사용예산제도는 지방재정법에 정해져 있는 정식 예산처리 방법이고, 간주처리는 그야말로 행정편의적 편법이자 무소불위 지방의회 예산심의권 무력화 술수다.
간주처리를 허용해주면 국비 및 광역시도비뿐만 아니라 자체예산이 들어가도 추경예산안 편성 및 의회심의도 받지 않고 지방정부(집행부) 마음대로 예산을 집행할 수 있게 된다.
반면 예산총칙에 간주처리 조항을 빼고 지방재정법에 정한대로 성립전사용예산으로 집행하게 하면 모든 예산안을 추경편성하게 돼 의회가 심의권을 확실하게 행사할 수 있다.
위 문서는 2016년 서울시의회가 예산총칙에서 간주처리조항을 삭제하자, 서울시 집행부가 내부에서 마련한 성립전사용예산 집행지침이다.
서울시는 예산총칙에 간주처리 조항이 있을 때는 성립전사용예산을 전액 국비 사업뿐만 아니라 자체 시비가 추가로 들어가는 시비매칭사업도, 심지어 기편성된 사업이 아니라 나중에 집행부 필요에 의해 새로 시작되는 신규 시비매칭사업도 간주처리해서 의회 보고로 절차를 끝내버리고 있었다.
위 문서에서 기편성된 시비매칭사업(시비추가부담 필요 경우)과 신규 시비매칭사업 모두 서울시의회의 추가경정예산 승인 없이 그냥 간주처리 집행하고 의회에는 보고만 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서울시의회의 예산심의권 회복은 1년 만에 막을 내리고 만다. 서울시 예산서 예산총칙을 보면 2016년 한 해에만 간주처리 조항이 삭제돼 있고, 2017년은 단서조항으로 간주처리가 부활하더니 그 이후 계속 예산총칙에 간주처리 조항이 실려 있다. 안타깝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