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경제위기에 확장재정 드라이브… 경기 회복 ‘선순환’ 기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위기를 맞아 정부는 기존의 틀을 깬 과감한 ‘나랏돈 투입’에 나서고 있다. ‘이럴 때 쓰라고 아껴둔 것’이라는 주장을 등에 업은 확장적 재정정책은 그간 한국 사회에 금과옥조로 자리매김한 ‘재정건전성 신화’를 뒤흔들고 있다. 재정 지출로 경기를 회복시키면 향후 나라 곳간이 다시 채워질 것이라는 ‘선순환’의 믿음이 배경에 있다.
코로나19 경제위기는 경험해보지 못한 충격이다. 실물경제에서 위기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2008년 금융위기와 다르며,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면에서 일부 아시아 국가에 국한된 1997년 외환위기와도 다르다.
민간경제가 위축된 상황에서 경기회복의 해결사로 나선 정부가 꺼내든 카드는 과감한 재정 지출이다. 올해 예산을 최초로 500조원 이상으로 꾸렸던 정부는 지난 3월 경기 진작과 방역대응을 위한 1차 추경(11조7000억원), 지난 4월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뒷받침하는 2차 추경(12조2000억원)을 편성했다. 7월 3일에는 금융·고용지원을 뼈대로 한 역대 최대 규모의 3차 추경(35조1000억원)이 국회를 통과했다. 한 해에 세 차례 추경을 편성한 것은 48년 만이다.
전통적으로 경기대응의 한 축을 이뤄온 통화정책이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현실은 확장적 재정정책에 힘을 싣는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통한 시중으로의 유동성 공급은 대출 여력이 있는 이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다. 위기에 처한 경제적 약자를 살리는 것이 절실한 시점에서 맞춤형·집중 지원이 가능한 재정 지출이 더 효과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흔들리는 재정건전성 신화
저성장·저물가와 더불어 저금리가 전 세계 경제의 새로운 기조(뉴노멀)로 자리 잡았다. 지난 3월 이후 두 차례 인하된 한국은행 기준금리(0.50%)는 역대 처음 0%대로 진입했다. 추가 금리인하 여력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재정 지출을 충당할 적자국채 발행에 소요되는 이자비용은 낮아져 재정정책의 여력은 더 커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당분간 확장적 재정정책을 이어가겠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주재한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재정이 경제회복을 앞당기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포스트 코로나 이후의 경제체질과 면역을 강화하는 백신 역할까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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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대의 재정건전성
코로나19 국면에서 재정건전성론자들은 급격한 재정 지출이 재정건전성을 단기간에 악화시킨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적극적 재정 지출에 나선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악화폭이 크지 않다는 반론이 나온다.
최근 나라살림연구소가 OECD 자료를 토대로 추산한 결과를 보면, 한국의 GDP 대비 중앙정부 통합재정수지 적자율은 지난 6월 기준(3차 추경 포함) 4.0%로 지난해 11월 전망치(올해 본예산 기준)인 1.5%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이 기간 OECD 회원국 평균은 3.3%에서 11.1%로 더 커졌다. 이에 따라 해당 수치로 본 한국의 건전성 순위는 24위에서 2위로 올랐다.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비율(D2) 변동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 전망치 기준으로 한국(43.8%)은 OECD 평균(110.0%)의 절반에 미치지 않는 수준이었다.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며 지난 6월 기준 한국(47.5%)과 OECD 평균(126.6%) 모두 증가했다. 한국은 증가폭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해당 지표의 건전성 순위가 8위에서 5위로 높아졌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경제악화 정도가 양호해 재정 여력을 비축했다는 의미로 긍정적”이라며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재정의 역할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부는 변화된 국가 재정의 역할과 관련해 올바른 방향성을 세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부는 확장재정 기조 아래 중·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불요불급한 재정 지출을 줄이는 강력한 지출구조조정을 최우선으로 추진하며, 재정 지출을 일정 수준 내로 관리하는 유연한 재정 준칙을 다음달 공개한다. 재정 지출을 법으로 엄격하게 통제하자는 주장이 나오나, 경제위기 시 적극적인 재정 대응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중·장기적인 증세 필요성도 제기되지만, 정부는 당장 그 가능성을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