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예산 지원, 땅이 아니라 사람에게
농민 정년을 조정하고 보조금을 사람에게 지원할 경우 지금처럼 땅에 집착하는 현실을 바꾸는 계기가 되고 자녀든 귀농인이든 다음세대로 농업이 이전되는 것을 촉진할 것이다.
우리나라 농민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정부 사업은 무엇일까, 논란의 여지없이 직불제이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농민들의 가장 큰 소득보전 수단이기 때문이다. 농업예산의 4분의 1이다. 우리나라 농민들이 생산하는 총생산의 10분의 1이다. 한마디로 농민 수입 중에서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농업 국내총생산(GDP) 29조원에 정부 예산은 14조원이다. 예산으로 유지되는 산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직불제는 세계화로 인한 시장 개방 때문에 생겨났다. 또한 식생활의 변화로 인한 공급과잉 기조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도입의 필요성이 있었다. WTO 출범 이후 농업인 소득보전 및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 증진을 위해 9개의 직불제가 순차적으로 도입되었다. 친환경농업(1999년), 조건불리(2004년), 경관보전(2005년), 쌀(고정·변동, 2005년), FTA 피해보전(2004년), 밭(2012년), 경영이양(1997년), FTA 폐업지원(2004년) 등 점차 그 종류도 많아졌다.
▲ 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여성농민회총연맹 주최로 10월 10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농민 결의대회에서 한 농민이 구호가 적힌 손팻말 위에 거친 손을 올려놓고 있다. 참가자들은 ‘쌀값 1kg 3000원, 농정개혁, 농민헌법 쟁취’를 요구했다. / 유수빈 기자
시장 개방으로 태어난 직불제
종류 못지않게 단가도 상승하여 예산도 증가한다. 쌀 고정직불 단가 인상(2012년도 헥타르당(ha) 70만원에서 2015년도 100만원) 및 목표가격 인상(2012년도 17만원→2013년도 18.8만원), 밭 직불 도입(2012년도) 등으로 직불제 규모가 증가하고 농업예산 대비 직불금 비중도 97년도 0.4%에서 2017년에는 19.7%인 2.9조원으로 증가해 왔다. 현재 대상면적도 쌀 소득보전 고정직불제만 하더라도 81만6000평이니 전 국토의 8%이며 논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직불금 확대를 통한 농가소득 안정 기여’라는 공약이 나왔다. 농업소득보전직접지불금은 매년 지급하고 고정직접지불금과 변동직접지불금으로 구분하여 지급한다. 지급상한도 있어서 농업인(30ha), 일반 농업법인(50ha), 공동경영체법인(400ha)까지만 대상이다.
그런데 이 사업은 꼼꼼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대농 중심이다. 보조금의 집행내역 현황을 보면 쌀 경작농가의 44.5%가 0.5ha 이하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 가구의 연평균 수령액이 27만원이다. 최대 면적구간과 10ha 이상 농민 간 고정직불금 보전의 차이가 53배다. 다시 말해 농업인 소득안정이라기보다 쌀 대농 소득보전으로 보조금이 집행되고 있다.
둘째, 과잉생산을 부추기고 있다. 고정직불금에 의한 논 경작지 면적 비례지원과 변동직불금을 통해 쌀값을 보전해주니 농민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기계화가 많이 된 쌀농사가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안정적 수익이 보장돼 쌀 생산이 줄지 않는다. 이것은 쌀값이 지속적으로 폭락하거나 각종 쌀 관련 지원 예산이 급증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셋째, 예산낭비의 측면 역시 없지 않다. 직불금의 사업목적은 쌀 생산 농업인의 소득안정 도모 및 논의 공익적 가치 보전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쌀 소비 감소, 과잉재고 보존비와 시장 격리비용을 추가 지출하면 전체 농업예산이 쌀에 집중되어 예산 집행의 편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식량안보 차원과 국제 곡물가격 협상력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차라리 소득보전 정책으로 전환하라
이제는 정책 전환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때가 되었다. 우선은 농가마다의 차이를 없앨 필요가 있다. 쌀 변동직불금은 기존 방식대로 쌀 생산농가의 소득보전으로 활용하는 한편, 논을 보존하는 쌀 생산농가보다는 실제로는 논 소유주를 위해 집행되는 고정직불금의 경우 논의 면적보다는 농가 균등배분 보조로 바꾸는 것이 농업의 지속성과 농민의 소득보전에 더 합목적적 사용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사업 단위가 아닌 사람 중심의 보조금으로 개혁해야 한다. 농업예산의 중심기조는 농업을 살리는 길이다. 농업은 농민이 있어야 한다. 현재 농업은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다. 99세로 규정된 농민의 정년은 직불금 때문에라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들이 농업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것은 농업기술이 다음 세대로 전수되지 못하는 재앙으로 이어진다. 만약 정년을 조정하고 사람에게 지원할 경우 지금처럼 땅에 집착하는 현실을 바꾸는 계기가 되고 자녀든 귀농인이든 다음 세대로 농업이 이전되는 것을 촉진할 것이다. 농민예산 14조원은 1000만원의 기본소득을 140만명에게 줄 정도의 큰 돈이다. 현재 농민의 수는 300만명이고, 그 중 절반은 농업외 소득이 더 많다.
마지막으로 농업의 미래도 생각해야 한다. 지금처럼 대농 중심의 보조금 정책으로는 농업이 예산에 의존하는 좀비산업이 될 것이다. 또한 쌀에만 의존하는 정책은 농업의 발전에도 방해물이 된다. 따라서 작물을 다양화하고, 공익적 기능을 다양화하는 ‘공익형 직불제’도 논의되고 있다. 당국은 직불금이 ‘적지 않다’고 하고, 농민들은 ‘증액이 필요하다’고 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농지가 아니라 농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만든다면, 농산물 가격이 안정되고, 식량 자급률도 올라갈 것이다. 산업적 이익과 공익적 기능이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현재 정부 지원금 100원에 농민 혜택은 17원이라고 한다. 대농과 관련 기업, 중간의 공공기관이 농업예산을 흡수하고 있다. 농업예산 기생계층이다. 더군다나 농업은 농업소득세부터 시작하여 각종 감면제도로 예산 외의 혜택도 수조원을 넘어선다. 따라서 농업은 돈이 부족한 문제가 아니라 구조를 어떻게 개혁하는가가 더 중요한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그런데 왜 안 될까. 당사자인 농민의 수동적인 대응, 담당자인 공무원들의 보수성, 해결자인 정치인들이 대농과 농업 토건세력에 포획된 것 때문이 아닐까. 관료사회의 특성은 자기영역만 생각하고 지키려는 ‘칸막이’와 변화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는 ‘귀차니즘’이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관료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개혁이다. 개혁은 더 일을 잘하려고 하는 것이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