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etter
언론에 비친 나라살림 연구소

[17.5] 넘쳐나는 대선 공약, ‘돈 걷는 법’만 쏙 뺐다

[시사저널] 17.05.02 박준용 기자

 

복지정책 쏟아내면서 재원 마련책은 미비한 ‘깜깜이’ 대선 공약

 

여론조사 1·2위를 달리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공약 재원 마련’ 분야에서 경쟁 후보에게 거센 질문 공세를 받았다. 여러 토론회에서 이런 ‘도돌이표’ 공세는 계속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 드는 공약은 많은데 돈 걷을 방법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누가 대통령이 돼도 재정 지출은 크게 늘어야 한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주요 정당 5명의 대선후보에게 재원 마련 방안을 질의한 결과에 따르면, 주요 복지·노동 공약들만 해도 5년간 최소 100조원 이상 소요될 전망이다. 공약상 각 후보들은 나름대로의 재원 마련 계획을 내놓고 있다.

 

우선 문재인 후보가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연간 35조6000억원의 예산이 든다. 공공일자리 창출에 연 4조2000억원, 청년 주거 예산으로는 연 3조원이 필요하다. 아동수당 도입(10만원 지급 기준)에 연 2조원이 필요하고, 65세 이상 노인(소득 하위 70%)의 기초연금을 30만원으로 확대하는 공약에는 연 6조3000억원이 추가로 드는 등 복지공약에 연 18조7000억원이 필요하다. 또 교육(연 5조6000억원), 중소기업 지원(연 2조5000억원), 국방·기타 공약(연 4조6000억원)에 드는 돈도 만만치 않다. 문 후보는 ‘J노믹스’ 공약에서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힌다. 중복예산을 정리하는 등 재정개혁을 하면 연간 22조4000억원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법인세 실효세율을 높이고, 탈루세금 과세 강화를 통해 연간 13조2000억원을 더 걷을 수 있다고 말한다.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 등 증세는 이런 조치를 한 뒤 단계적으로 하겠다는 계획이다.

 

 

대선후보들의 허술한 재원 마련 방안

 

안철수 후보 공약도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안 후보 측은 아동수당에 연간 5조1000억원(자녀소득공제를 없애면 3조3000억원), 국방비를 국민총생산(GDP)의 3%까지 증액하자는 공약에는 5년간 10조원이 든다고 발표했다. 기초연금·중소기업 청년 공약도 저마다 연간 수조원 이상 예산이 필요하다. 안 후보 측은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연간 40조9000억원이 든다고 추산한다. 안 후보의 재원 마련 대책은 공평과세 구현(연 12조6000억원), 세출 구조조정 등 재정개혁(연 9조9000억원), 세수 초과징수 예상분 활용(연 7조3000억원), 국세비과세 감면(연 11조1000억원) 등이다. 특히 안 후보 측이 중앙선관위에 제출한 10대 공약 내용을 보면, ‘조정’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면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19조원을 조정’  ‘매년 17조원에 달하는 일자리 관련 예산을 조정’해서 재원을 충당한다는 식이다. 안 후보는 세출 구조조정과 비과세 감면 등 개혁을 먼저 한 뒤, 법인세 증세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일자리 110만 개 창출 △기초연금 30만원 등 재원 소요 공약들을 내놨다. 공약 재원 마련 방안으로 세출 구조조정과 지하경제 양성화를 주장했다. 홍 후보 역시 자연스러운 세수 증가분을  활용해 공약을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문·안 두 후보와 달리 ‘증세’를 전면에 세운다. 심 후보는 △육아휴직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슈퍼우먼방지법’ △월 30만원의 기초연금 지급 등 공약의 재원으로 연평균 110조원이 든다. 이 예산 마련을 위해 심 후보는 ‘사회복지세’ 도입을 주장했다. 복지에만 활용하는 목적세를 통해 연 21조8000억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심 후보는 이외에도 부자증세 방향으로 소득세율을 고쳐 연 14조6000억원을 마련하고, 부동산세·법인세 인상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말한다. 유 후보도 △국방비 비중 확대 △아동수당 도입 △육아휴직 3년 보장 등을 내놓으며 5년간 208조원이 소요된다고 밝힌다. 재원 마련을 위해 예산 효율 편성과 함께 ‘중부담·중복지’ 카드를 꺼내 들었다. 또 고용보험기금,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해 재원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각 대선후보의 재원 마련 계획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일부 재원 마련 방안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탓이다. 가장 큰 허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은 다수의 후보가 제시한 세출 구조조정을 통한 재정개혁이다.

 

물론 재정개혁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될 순 없다. 전문가들은 세출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공약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채연하 좋은예산센터 정책팀장은 “정부가 투자하는 사업들 중 중복되는 게 많다. 중단해야 하는 사업도 많다. 사업평가들을 제대로 하고 최대한 예산 조정을 해 스스로 재원을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예산조정이 얼마나 재원을 만들 수 있을지는 파악해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재정개혁이 재원 마련의 ‘만능열쇠’로 비치는 부분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예산 재조정이 대규모 재원 마련 방안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면서 “한 해 예산 400조원 중 전체의 35% 정도인 140조원 정도만 행정부가 순수하게 재량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 위원장에 따르면, 대선 공약이 제시한 대로 현재 집행되는 일자리 예산(매년 17조원), 연구개발 예산(매년 21조원) 등을 조정해도 새로운 재원 마련 여지는 적다. 현재의 일자리 예산은 노동 관련 예산도 포함된 수치다. 매년 17조원 중 약 6조원이 실업급여와 육아휴직 수당 등에 활용된다. 삭감이 어렵다. 연구개발비 예산도 마찬가지다. 연구개발비 증 상당 비중이 국책연구원 개발비, 국립대 연구비에 쓰인다. 이 또한 큰 폭으로 조정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후보자가 예산 재조정을 공약했더라도 어떤 부분을 줄일지를 구체적으로 말해야만 의미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도진 조세재정연구원 국가회계재정통계센터 소장은 “세출 구조조정은 효과성 기준에서 효율성 기준으로 세출을 개혁하자는 것인데, 기준을 어떻게 할 것이고 어디서 줄일 것인가가 중요하다”면서 “대선 공약들은 감성에 호소할 게 아니라 재원 마련을 위한 숫자가 증명될 수 있느냐를 말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초과세수에 대한 기대는 낙관…증세 필요

 

아울러 안철수·홍준표 후보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세입 증가’에 대해서도 우려의 시선이 있다. 경제성장으로 세수가 자연증가하면 세출도 는다. 인건비·복지지출 등을 해마다 늘려야 하는 탓이다. 오건호 위원장은 “자연 세입 증가분은 자연 세출 증가분이 상쇄한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자연 세입 증가분 외에 ‘초과세수’가 발생하면 재원 마련은 가능할 수 있다. 초과세수는 정부가 기존에 예측했던 것보다 더 걷힌 세금을 말한다. 실제로 초과세수로 정부는 2015년 2조2000억원, 2016년 9조8000억원의 세금을 더 걷었다.

 

하지만 초과세수를 미리 가정하고 재원 마련 대책을 세우기는 어렵다. 초과세수는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초과세수는커녕 ‘세수결손’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2012부터 2014년까지 3년간 정부 예측보다 세금이 덜 걷혔다. 2012년 2조8000억원, 2013년 8조5000억원, 2014년에는 10조9000억원의 세수결손이 발생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공약들의 세입 예상치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라고 분석했다.

 

결국 대선후보들이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증세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준표 후보를 제외한 대선 주자 4명이 큰 틀에서 증세에 찬성하는 것도 이런 현실적 이유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후보들은 증세를 한다면 우선 법인세를 수정해 재원을 확보하자는 입장이다. 조세저항이 다른 세목보다 적어 그나마 명확한 재원 마련 방안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다만 법인세 명목세율을 올리는 것을 두고는 후보별 온도차가 있다. 특히 문·안 후보는 ‘법인세 명목세율 증세’에 앞서 ‘실효세율 정상화’가 선결과제라 말한다.

 

이를 두고 대기업 세제 혜택을 줄여 법인세 실효세율 인상에 집중하는 방안은 재원 마련에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을 하지 않은 채 실효세율만 정상화하면 연 2조원 안팎의 재원밖에 얻을 수 없는 탓이다. 반면 법인세 명목세율을 올리면 과세표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연 4조~5조원을 추가로 마련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용원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간사는 “박근혜 정부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상이라는 게 증명됐다. 후보들은 복지정책을 하겠다고 하면 재원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유력 대선후보들이 법인세 증세 문제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아 우려된다”면서 “유력 두 후보를 포함해서 네 후보들이 법인세 인상을 찬성하는 점은 환영할 만하지만, 더 명확하게 해 줄 필요가 있다. 선거 때조차 재원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선거가 끝나고는 재원 조달을 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