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etter
언론에 비친 나라살림 연구소

[17.4]국가예산 감시 민간 파수꾼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나랏돈 새는 곳 없는지 꼼꼼히 들여다봅니다"

[파이낸셜뉴스] 17.04.06 장민권 기자

 

'최순실과 예산도둑들' 발간.. 일반인 대상 예산 교육도 열어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니 책장에 빼곡히 들어찬 예산보고서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 중앙행정기관 53곳 중 국정원을 제외한 52곳의 8000여개 예산사업 설명서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수년간 축적한 결과물이다. 한해 동안 분석하는 분량만 평균 10만쪽에서 많으면 14만쪽에 달한다고 한다. 박근혜정부 집권 3년간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인 최순실씨가 사적으로 남용하려 한 국가예산만 1조4000억원에 이른다는 분석으로 파장을 일으켰던 책 '최순실과 예산도둑들'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최근 서울 동교로에 자리잡은 나라살림연구소에서 만난 정창수 소장(사진)은 '구조조정'의 달인으로 불린다. 전문분야는 바로 '나랏돈'이다. 국가예산이 허투루 쓰이는 사업을 찾아내 꼭 필요한 곳에 그 돈이 쓰일 수 있도록 국회를 압박하고 요구하는 일이 핵심이다. 마치 회계사가 기업의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듯 공공분야의 낭비되고 있는 예산을 찾아내는 것이다.

"국회의원들 상당수가 국가예산이 수백, 수천억 줄거나 늘어나는 것보다 당장 본인 지역구에 예산 5억~10억원 가져오는 데 더 관심이 많아요. 실제 예산삭감 규모를 봐도 전체 0.05% 수준에 불과하죠. 더구나 지역구로 가져온 '쪽지예산'의 70%는 주민들이 아니라 공공기관 예산에나 쓰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정권이 바뀐다고 정부가 바뀔까요. 유신시대나 지금이나 예산을 집행하는 방식은 별반 달라진 게 없어요. 예산에 대한 관심을 갖고 참여율을 높여야 하는 이유죠." 

 



예산을 제대로 쓰기 위해선 한해 동안 집행한 예산을 점검하는 결산심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그다. 예산을 짤 때 낙관적인 추정하에 과대하게 편성할수록 결산작업 시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실시간 재정정보공개에 나서는 등 실질적인 재정투명성 강화 조치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정 소장이 예산을 법률로 의결해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내는 '예산법률주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올해 편성된 400조원 예산 중 신규예산 규모는 1.7% 수준밖에 안됩니다. 99%는 하던 사업을 그대로 계속하는 데 쓰인다는 거죠. 예산을 낭비해서 처벌받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정부 기관들이 불필요한 규제를 양산하는 것도 예산낭비의 한 요인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납세자 소송제도를 도입하거나 결산을 예산에 환류시키는 방식으로 결산에 지적된 것은 반드시 예산에 반영하는 것도 고려해 볼 때입니다." 

 



곧이어 현재 재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보다 적극적으로 재정집행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뒤따른다. "400조원의 예산 중 불용액을 제외하고도 아예 안쓰는 예산으로 잡아놓은 것만 40조원입니다. 나중에 이월금으로 처리하는 거죠. 특별회계와 일반회계 기금을 서로 주고받는 예수예탁기금만도 100조원에 달하죠. 400조원 중 실제 쓰는 돈은 300조원도 안된다는 의미입니다. 재정은 경제조절 기능이 있는 만큼 안쓰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그러면 예산 의미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국가 예산을 처음 들여다보면 각종 숫자가 얽히고설켜 400조원이라는 입이 떡 벌어지는 숫자와 맞닥뜨리게 된다. 예산 용어 하나를 해석하기조차 만만치 않다. 그만큼 '평범한' 사람들이 '나라 곳간'에 관심을 갖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달리 말하면 어렵다고 해서 내가 낸 세금으로 모인 '나랏돈' 편성.집행 과정을 감시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국가예산이 '눈먼돈'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라살림연구소가 매년 '나라살림전문가' 과정을 개최하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예산 교육에 나서는 한편, 국민참여투표로 문제되는 국가예산 사업을 선정해 국회청원에 나서는 이유다.
 
"내 돈이 쓰이는 만큼 예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사회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예산이 골고루 요긴하게 쓰여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발전을 더디게 만든다면 우리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예산 감시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