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etter
언론에 비친 나라살림 연구소

[15.11] “장관님 검토하셨죠” 의원들 ‘지역구 예산’ 노골적 압박

[한겨레] 15.11.18  송경화 기자


11월2일 오전 10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안상수 새누리당 의원(인천 서구강화군을)이 첫번째 질의자로 나섰다. 주어진 시간은 10분이었다. 안 의원의 발언은 지역구 예산 증액에 집중됐다. “경제부총리께서도 가능하시겠지요?”, “장관님, 검토되셨지요?” 따위의 ‘압박성 발언’이 꼬박꼬박 따라붙었다. 그가 10분 동안 쏟아낸 8건의 질의 중에 예산안의 전반적 현황이나 정책을 묻는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인천시장 출신인 안상수 의원의 예결위 질의는 정부 예산을 심사하는 국회의원보다 지역 예산을 심사하는 기초의원의 모습에 더욱 가까워 보였다.

10월28일부터 지난 9일까지 예결위 소속 국회의원 50인은 오전 10시부터 늦은 밤까지 황교안 국무총리 등 50여명의 국무위원과 기관장들을 상대로 릴레이 질의를 이어갔다. 회의는 밤 10시를 넘겨 끝나기 일쑤였다.

예결위 전체회의는 정부의 새해 예산안을 종합적으로 따져보는 감시의 마당이며, 사업의 타당성과 적정성을 공개적으로 짚어보는 견제의 시간이다. 하지만 2015년 대한민국 국회 예결위는 이와 거리가 멀었다.

나라살림연구소가 18일 집계해보니, 예결위원들이 던진 전체 질의 933건 가운데 31.8%인 297건이 지역구 예산 증액 등 민원성 요청에 집중됐다. 예결위가 ‘지역 민원창구’로 전락한 것이다.

정부사업 타당성 견제 잊은 의원들
“구룡포~감포 국도 예산 증액” 등
개별사업·금액 콕 찍어 요구
안상수 의원, 23건 민원성 ‘최다’

비례대표도 ‘예비 지역구’ 챙기기
이정현 의원 ‘장성 진급’ 황당 발언


예결위원들의 민원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구룡포~감포 간 국도 31호선 예산 증액’(박명재 새누리 의원·포항시 남구울릉군), ‘안산 산업역사박물관 내년도 착공 추진’(부좌현 새정치연합 의원·안산시 단원구을) 등 개별 사업과 금액을 콕 찍어 증액을 요구했다. 해당 부처 장관의 ‘컨펌’(확인)을 받으려는 의원들도 많았다. 전남 순천시와 곡성군이 지역구인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은 “호남 지역 군 장성들이 최근 진급 명단에 많이 없어 아쉬워하는데 각별히 노력해달라”며 예산과 관련 없는 ‘인사 민원성’ 발언을 했다. 일부 의원들은 전체회의 뒤 ‘예결위원으로 지역 ○○ 예산 확보를 강조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지역구 증액 요청을 가장 많이 한 의원은 안상수 의원이었다. 모두 23건의 지역구 예산안을 언급했다. 그 뒤로는 김한표 새누리 의원(경남 거제) 19건, 한기호 새누리 의원(강원 철원화천양구인제) 19건, 김동완 새누리 의원(충남 당진) 18건 차례였다. 야당에서는 이상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전주시 완산구을)이 11건으로 가장 많았다. 반면 새정치연합 예결위 간사인 안민석 의원(오산시)이나, 홍익표 의원(서울 성동구을)은 지역구 관련 요청을 거의 하지 않았다.

비례대표 의원들도 ‘예비 지역구’ 눈도장 찍기에 여념 없었다. 내년 총선을 겨냥해, 출마 예정 지역구의 예산을 미리 당기려는 것이다. 부산 사상 출마가 예상되는 새정치연합 배재정 의원은 부산 사상지역 자율형 공립고 예산 증액과 사상 감전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추진을 강조했고, 대구 출마가 예정된 같은 당 홍의락 의원은 경북도청 연구용역 예산을 요구했다. 수원 출마가 유력한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은 수원발 케이티엑스(KTX) 예산을 증액해달라고 했다.

정책 현안에 대한 예산 증액을 요구한 질의는 33.3%로 지역구 예산 증액 요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정책 증액 질의 312건 중 45건은 부처 민원성 질의로 보인다고 나라살림연구소는 추정했다. 예컨대 한기호 새누리 의원이 “대학생 통일 교육 예산이 덜 편성됐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넌지시 증액을 요청하자,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말씀하신 대로 대학생 통일 교육이 굉장히 필요한데 지금 반 정도만 반영됐다. 조금 더 반영되면 좋겠다”고 즉시 화답했다. 농촌 지역구 의원들은 지역구를 특정하진 않았지만 농업 지원 예산 확충을 강조하는 등 사실상 지역 현안 차원의 정책 질의를 많이 했다.

그나마 일부 의원들이 지역구 민원보다는 국가재정 현안과 정책 문제를 캐묻고 따지는 데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인영 의원(서울 구로갑)은 지역 현안은 2건만 거론하며 경제성장률 예측, 재정 적자 문제, 총선용 선심 예산 편성 문제 등 예산 관련 현안에 대해 12건을 질의했다. 박범계 의원(대전 서구을)도 세수 확충 방안 등 큰 틀의 질의에 집중해 눈에 띄었다.


예산의 문제점을 지적해 ‘삭감’하라는 의견을 낸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전체 933건 질의 중 32건만이 감액 의견이었다. 특히 홍익표 새정치연합 의원이 7건으로 가장 많았다.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사단법인 헌정회에 대한 예산 지원 삭감 등이 그 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